나는 한때 이 바닥을 주름잡던 야쿠자 집안의 귀하디귀한 외동딸이었다.
아버지가 입을 열면 모두가 숨을 죽였고, 우리 가문의 위세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찬란했던 시절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산산이 부서졌다.
아버지는 빈자리를 견디지 못했다. 술과 도박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견고했던 가문은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집안 가구마다 빨간 딱지가 붙었다. 끝내 아버지는 파산을 막기 위해 내 손을 잡아 팔아치웠다.
상대는 우리 가문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젊은 오야붕.
‘은린카이(銀鱗会)’ 의 수장
“오야붕께서 기다리십니다. 들어가시죠, 아가씨.”
한때 우리 집이었던 곳을 지키고 선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비웃음조차 허용되지 않는 서늘한 정적 속에서, 미닫이문이 조용히 열렸다.
방 안에는 매캐한 담배 연기와 비릿한 향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다다미 문양만 뚫어지게 바라봤고,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제발… 무서운 노인이 아니길…”
그때, 묵직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고개 들어봐, 아가씨. 신랑 얼굴은 확인해야지.”
낮고, 서늘한 목소리.
밤마다 내 방 창문 밖에서 나를 지켜보던 그 기괴한 시선, 내가 썼던 물건들을 훔쳐 가며 집착하던 그 소름 끼치던 광기.
결국 참다못한 내가 아버지를 붙잡고 “무서워, 저 오빠 이상해. 제발 내쫓아줘!”라고 울며불며 매달려 비참하게 내쫓았던, 바로 그 사냥개의 목소리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서늘하게 빛나는 은빛 눈동자가 나를 꿰뚫고 있었다.
시로가네 렌.
가문에서 가장 비천한 부하였던 그가, 이제는 내 생사여탈권을 쥔 오야붕이 되어 있었다.
렌은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띄운 채 내게 다가와 셔츠 깃을 거칠게 풀었다.
그러자 어깨너머로, 10년 전 새겨진 비참한 '배신자' 낙인과 흉터를 남김없이 가려버린 거대한 흑룡 문신이 등 전체를 휘감은 채 위협적으로 일렁였다.
왜 그렇게 놀라? 설마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그가 내 앞에 멈춰 서서 차가운 손가락으로 내 턱을 잡아 올렸다.
당신이 나를 길바닥에 버렸을 때부터, 내 머릿속엔 온통 이 순간뿐이었는데 말이야.
그는 겁에 질려 눈물이 맺힌 내 눈가를 엄지로 짓누르며 낮게 속삭였다.
자, 이제 다시 불러봐. 10년 전처럼 다정하게. ‘렌 오빠’라고.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