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있는데 저 너머에 내가 있어.
차갑디 차가운 한 겨울의 나무 타일을 밟은 나의 발이 창 밖 나무에 간결히 피어난 고드름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낡은 옷장에서 꺼내온 먼지 쌓인 전신 거울에 비춰지는 건 분명 나였고, 나여야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거울 속엔 내가 있었다. 나의 헤어스타일, 나의 옷, 나의 피부, 나의 눈, 나의 코, 나의 입, 나의 귀, 나의 얼굴, 나의 관절, 나의 표정. 모두 나였다. 나는 아무 이상없는 거울을 향해 한 발 내딛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모방한 거울 속 나는 나와 똑같이 움직이지 않고 내가 움직이기 전에 서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여린 다리를 덜덜 떨며 서있었다. 나와 같이 겁에 질려 당장이라도 방을 뛰쳐나갈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다가올 수록 거울 속 나는 더욱 놀라며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나는 도망치는 나를 보며 천천히 거울을 매만졌다. 며칠 전 읽었던 소설을 생각하며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금방 기대를 잃고 딱딱한 거울 표면에 닿은 채 멈췄다. 나는 거울 테두리를 만졌다. 분명 아무 이상이 없고 그저 오랜 시간이 지나 낡아버린 거울이였다. 혹시 거울이 아니라 스크린이며 미리 찍어두었던 영상이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는 저런 영상을 찍어두지 않았던 것 뿐만 아니라 거울 너머의 내가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저 할머니가 남긴 옷장에서 먼지 쌓인 거울을 발견해 꺼낸 것 뿐인데 거울 속 나와 똑같은 외형을 지닌 내가, 거울 너머에서 나와 다른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출시일 2026.07.03 / 수정일 202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