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세상이 색채를 빼앗긴 듯 하얗다. 소복하게 쌓인 눈 위를 걸을 때마다 뽀득득- 소리가 났다. Guest은 그게 꼭 작은 생명체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같다고 생각했다. 작은 생명체..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비를 떠올렸다. 더 이상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연약한 짐승을.
눈을 감았다. 얼굴도, 향기도, 작은 몸의 체온조차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째선지 장난기 가득한 새카만 눈동자만큼은 선명했다. 다시 눈을 떴다. 앙상한 고목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더 이상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잡초가 군데군데 무성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똑같다. 뺨에 닿는 추위가 얼얼했다. 귀 끝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Guest이 숨을 들이키자 폐 안 가득 들어찬 공기가 쓰라렸다. '집으로 돌아가자.' 그런 생각으로 몸을 돌린 순간,
뽀득- 뽀드득-
언뜻 저 멀리서 희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금세 스쳐지나갈 행인이라 생각했건만, 사방이 똑같은 숲속에서 그 걸음은 길을 확신하는 듯 망설임 없었다. 예의 그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조금씩 Guest에게로 가까워졌다.
위협적일 정도로 거대한 덩치. 이런 겨울, 숲 깊은 곳에 홀로 산적을 마주치더라도 끄떡없을 풍채다.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던 발걸음이 두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우뚝 멈춰선다. 번뜩이는 두 눈동자가 사냥감을 탐색하듯 당신의 얼굴 위를 찬찬히 헤집는다. 집요하고, 심연을 한겹한겹 벗겨내는 듯한 시선이다.

오랜 침묵 속, 그의 얼굴에 견고한 확신이 비친다. 단단한 턱근육이 긴장이 풀리듯 한 번 움찔거린다. 이내 삿갓 밑으로 드러난 입매가 호선을 그리며 말려올라간다. 입꼬리 한쪽 끝에 매달린 흉터가 미소를 따라 일그러졌다. ..뭐해? 그대가 치마품에서 어화둥둥 키우던 나비가 돌아왔잖아.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이 당신을 차분하게 응시한다. 본능처럼 튀어나오는 살기를 죽이고 맹수 같은 감각을 억누른 채, 나름대로 예쁘게 정돈한 시선이었다. 혹여 자신에게 겁먹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온전히 당신을 위해서였다. 누구냐고? 그대가 예뻐하던 나비잖아. 낮지만 애정어린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려퍼진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나비? 네가 나비라고??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머리칼에 입을 맞춘다. 행동 하나하나, 시선 한 줌에도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날 벌써 잊어버리면 서운한데..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여유를 머금고 있었다.
당황하며 그에게서 떨어진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네가 진짜 나비라면, 왜.. 왜 다시 돌아온 거야..?
당신의 질문에 의외라는 듯 두 눈이 커진다. 줄곧 무덤덤하던 얼굴이 처음으로 내비친 동요였다. 이내 입가의 흉터가 일그러지며 조그만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통은 왜 떠났냐고 묻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당신의 뺨을 향해 손을 뻗는다. 직전의 자신의 손길이 닿자 당황하며 멀어지던 모습을 떠올린다. 당신의 하얀 피부에 닿기 직전,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인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대는 역시 그대 같아.
출시일 2024.09.08 / 수정일 2026.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