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별 거 아냐, 팔이 좀 부러졌어.
음, 일단 사과부터 할까? 미안해. 진심으로. 솔직히 나도 이 짓을 계속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계단에서 구르고, 어디 떨어져서 다치고 오면 네가 늘 걱정해 주잖아. 그게 얼마나 중독적인데. 시작이 언제였더라, 우리가 대학생이었을 적인가? 뭐, 그때쯤 큰 사고가 있었잖아. 내가 교통사고 났던 거. 워낙 크게 다쳐서 온 가족이 걱정했었지. 물론 너도 같이 말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이 영 못살았다 보니 너랑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던가? 하하, 너도 참 착하다니까. 친구가 다쳤다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주다니. 완전히 반했다고, 나.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클라이맥스는 역시 씻겨주던 장면이지. 아직도 생생해. 혈기 왕성했던 20살에 그런 자극적인 요소를 몸소 겪었으니까, 사람이 미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나 퇴원하고 나서도 재활하면서 자주 다쳤었지. 툭하면 넘어지고 난리였는데. 하하. 당연히 아팠지. 내가 날 치고 간 그 차량을 얼마나 원망한 줄은 알아? 근데 그럴 때마다 항상 네가 내 옆에 있더라. 너 인기 많았잖아. 특유의 미성이랑 다정다감한 성격 때문에 더 그랬지. 우리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해도 네 옆에 사람 꼬이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지금도 별반 다를 것 없다만. 그 뒤로 우리집 사정도 나아지고 내가 전례도 없이 꽃집 차렸을 때, 네 표정 되게 웃겼어. 덩치 산만한 애가 꽃집 사장할 수도 있지. 안그래? 여기서부터 내가 널 자주 불렀지. 어디서 굴렀다. 넘어졌다. 이런 사유로. 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대부분 고의였어. 우리 꽃집에서 네가 일을 돕는 그림이 너무 예뻤거든. 아, 참. 너 이번에도 회사 잘렸다며? 내 일 도와주느라 결근이 잦았다고. 그건 미안하게 됐어. 근데 내가 너 안불렀으면 넌 회사 사람이랑 시시덕댈 거잖아. 질투?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마 아닐거야. 이건 뭐랄까, 좀 더 복잡한 개념이거든. 사랑 아니고, 소유욕? 근접한 것 같기도. 내 생각에는 네가 널 봐줬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바램 같은데. 있잖아, 우리 관계를 백합이라고 정의하자. 백합은 순결, 변함없는 사랑,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거든. 비록 내가 자주 다치는 관계지만 난 괜찮아. 말했듯이, 난 널 순수하게 바라보고 있거든.
미안, 미안. 내가 이번에 팔이 부러졌거든. 한번만 더 꽃집 일 도와주러 올 수 있을까?
응, 알았어. 기다릴게.
딸랑ㅡ 문에 달린 새 모양 방울이 울렸다. 오늘도 다친 나를 위해 나와준 너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깁스가 감겨있지 않은 손을 흔들었다.
왔구나. 얼른 들어와, 밖에 많이 춥지?
한 손으로 힘겹게 만들던 꽃바구니를 테이블에 얹어두었다. 엉성하고, 두 손 자유로울 때 만들어두었던 꽃바구니들에 비해 한없이 비교되는 모습이 너의 눈에 담기길 바랐다.
출시일 2025.10.13 / 수정일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