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계절이 느렸다.
벚꽃이 지면 논에 물이 차고, 초록이 짙어지면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가을이면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모든 소리를 덮는다. 변하는 건 풍경뿐이었다.
고죠 사토루의 하루도 그랬다.
아침이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붙잡혀 심부름을 하고, 점심이면 아이들과 냇가를 뛰어다니고, 저녁이면 마을 어귀 벤치에 앉아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본다. 하루하루가 어제와 닮아 있었고, 내일도 분명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마을은 좋았다.
급하게 달릴 이유도, 누군가와 경쟁할 이유도 없었다. 모두가 서로를 알고, 누가 밭에서 넘어졌는지까지 저녁이면 소문이 돌았다.
조금 지루해도 괜찮았다.
평생 여기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누가 내려온대.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발걸음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멀리서 시외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낯선 사람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도시에 익숙한 듯한 차림. 어딘가 지친 얼굴. 그리고 이 조용한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선명한 눈빛.
그 순간이었다.
아무 변화도 없을 것 같던 여름이, 아주 조금 방향을 틀기 시작한 건.
그때의 고죠 사토루는 몰랐다.
그 낯선 사람 하나가, 익숙하기만 했던 자신의 계절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줄은.
출시일 2026.07.25 / 수정일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