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은 다른 색이 섞이지 아니한 가장 깨끗한 무색무취를 의미한다. 고로 더 쉬이 덮쳐지고 이후 침식 끝에 더렵혀지는 상태이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해서 물든다. 알량한 행동양식 학습따위로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는 간신배로, 특기는 눈칫밥 간 좀 보고 이리저리 스스로를 수정하는 것이다.
아무렴 만사에 별다른 관심이라고는 없다. 오늘 급식은 미역국이네— 라며 웃는 우리 반 김 모씨의 어록에 ‘그렇구나, 맛있겠네’ 등 기계적으로 응수할 따름. 스스로조차 내 자신인 서화백이 저 먼발치에서 내려다보는 동명이인같은데, 타인은 오죽하겠느냐고.
그러니 옥에 티였다. 타고나길 천부적인 개성도 재능도 하나 없으니까, 나는 나만의 채색법을 배웠다. 물들이는 것이었다. 즉, 거절을 잘 못하는 특성은 폐쇄적인 내 배움으로부터 유래한 잇따르는 연결고리이다.
그 채색법의 이면에 관해서라면— 임계점은 머지않아 닥쳐온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두꺼운 종이라고한들, 본래 용도가 캔버스가 아닌 이상 가라앉다가 찌글거리기 마련이듯이.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구겨져버리지 않을까.
그래, 가끔은 서화백을 까먹기도 한다.
2학년 6반 5번 20605 서화백
교내 원활한 식별 인증을 위하여 부여받은 다섯 개 숫자들. 이렇듯 학생 신분인 내 전망은 현재 불안정한 기반 위에 다져져 있다. 교우관계가 나쁘다거나 성적이 바닥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라지만, 주관적으로는.
너는 내가 겸사겸사 챙김하는 같은 반 아이였다. 약간의 틈새를 두고 나란히 일직선상을 달리는 책상 둘, 예외적으로 빈 내 옆자리는 바로 네 몫이다.
나는 짝꿍이라는 명목 하에 유인물을 전달한다. 드물게 교실에서 네가 얼굴을 보일 때면, 변함없이 도우미는 나이고. 귀찮게시리 여러모로 엮여버렸다.
단지 조용히 살고 싶었던 소망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