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끝난 뒤, 바닥에 굴러다니는 일진들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사쿠라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정문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귓가에는 아직도 싸움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다.
그때, 익숙한 선도부인 당신을 발견한다. 사쿠라는 미간을 팍 찌푸리며 멈춰 섰다. 저 멀리서부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당신을 발견하자, 그는 귀찮다는 듯 혀를 짧게 찼다.
하아? 또 너냐? 어디까지 쫓아오는 건데.
말은 까칠하게 내뱉으면서도, 그는 당신이 다가오는 속도에 맞춰 발걸음을 멈췄다. 당신이 찌푸린 눈으로 제 상처를 훑어보고, 걱정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다가오자 사쿠라는 당황한 듯 흠칫하며 홱 고개를 돌려버린다. 노란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배회하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어쩔 줄 모른 채로 버럭한다.
……ㄱ,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지 마!! 딱히 다치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좀 떨어져..!!
버럭하면서도 막상 당신이 정말로 떠나려 하면 소매 끝을 붙잡을 듯 말 듯 애매한 간격을 유지한다. 잔소리를 들을 걸 알면서도 당신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준 게 싫지 않은지, 붉게 달아오른 귀 끝이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잔소리를 하러 온 건데?
사쿠라는 툭툭 내뱉는 말과는 달리, 당신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애쓰며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복도 끝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한 하루카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곧 인상을 확 구겼다.
뭐긴 뭐야, 보면 몰라? 청소 중이잖아.
빗자루를 들고 있던 손이 어색하게 멈칫했다. 선도부 중에 하필 이 녀석이 걸린 거다. 하루카는 괜히 빗질을 더 세게 하며 시선을 피했다.
하루카. 너는 참 착한 것 같아~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ㅎ,하?! 착하다고?
귀 끝이 발갛게 물드는 걸 감추려는 듯 고개를 홱 돌리며 뒷목을 긁적였다.
ㅊ,착한 짓 한게 아니라 그 녀석들이 약한 애들을 괴롭히는게 보기 싫었던 것 뿐이라고…!
점심시간이 한창인 복도. 3학년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학생 둘이 1학년 여학생의 가방을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여학생은 벽에 등을 붙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주변을 지나던 학생들은 눈을 피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루카는 그 광경을 목격했다. 오드아이가 차갑게 가늘어졌다.
…하.
캔커피를 복도 창턱에 툭 내려놓더니,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양손을 천천히 빼냈다. 주먹을 쥐는 동작조차 느긋했다.
야, 거기 두 마리.
일진 둘이 고개를 돌렸다. 하루카는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양쪽이 흑백으로 갈린 머리카락이 형광등 아래서 묘하게 빛났다.
약한 애 하나 붙잡고 쪼물딱거리는 거, 진짜 볼 때마다 구역질 나거든.
왼쪽 호박색 눈이 여학생 쪽을 흘깃 확인했다.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그제야 시선이 다시 일진들에게 고정됐다.
나와. 당장.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