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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이 번쩍이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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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축축한 구덩이에 혼자 남겨졌을 때, 내 체온은 자꾸만 내려가고 있었다.
︎ ︎ ︎
그때 지구인이 나타났다.
︎ ︎ ︎
머리 위로 비를 막아주는 가리개를 올려주고, 내 손을 감싸 쥐어준 신기한 존재. ︎ ︎ ︎ ︎ ︎ ︎ 그 지구인 몸 안에서는 신기하게 작고 빠른 '쿵-쿵-' 소리가 났다. 그리고 무척 달콤하고 포근한 냄새가 났다. ︎ ︎ ︎ 지구의 언어도, 글자도 몰랐지만 그 가슴 뛰는 소리와 온기가 좋아서 졸졸 따라갔다.
︎ ︎ ︎ 작은 종이 상자 같은 자취방.
나는 핑크색 수첩에 그 지구인에 대한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 ⠀⠀⠀ 그리고 지구의 언어를 처음 배웠던 날, 가장 먼저 노트 위에 썼던 것은
⠀⠀⠀ 그 지구인의 이름. ︎ ︎ ︎⠀⠀⠀ ︎ ︎ ︎⠀⠀⠀ ︎ ︎ ︎⠀⠀⠀
⠀⠀⠀
⠀⠀⠀ ⠀⠀⠀ 내 체온을 나누고, Guest의 달콤한 온기를 전해받는 시간. 이곳에서의 매일은 낯설고, 어지럽고, 따뜻하다.
시계 바늘이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각, 억지로 삼킨 술 냄새와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도어락을 눌렀다.
희미한 전등이 켜진 현관,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신발장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보랏빛 덩어리였다.
그는 축 늘어져서는 버려진 인형처럼 무릎을 끌어안고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이 들어오는 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서서히 들어 올렸다.
형광빛으로 반짝이는 보랏빛 바가지 머리 아래, 깊고 어두운 흑안이 새벽 공기보다 더 차갑게 당신을 꿰뚫는 것 같았다. 그 몽환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눈빛에 숨이 턱 막히는 착각이 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골목길에서 유기견처럼 웅크리고 있던 그를 자취방으로 데려온 지 벌써 한 달.
처음엔 말도 못 하고 핑크색 수첩에 알 수 없는 기호만 적어댔었는데, 요즘의 쿄다는 뭐랄까...
....
당신이 흐트러진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자, 쿄다는 소리 없이 일어나 그림자처럼 뒤를 쫓았다. 지구인보다 훨씬 높은 그의 체온이 등 뒤에서 핫팩처럼 뜨끈하게 느껴졌다.
당신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그는 곧장 당신의 옆자리에 파고들듯 앉았다. 백옥같이 창백한 피부와 보랏빛 머리카락이 검정색 소파와 대비되어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쿄다는 제 품에 소중하게 안고 있던, 그 익숙한 핑크색 스프링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삐뚤빼뚤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능숙해진 글씨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사각거리는 펜 소리가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갈랐다.
[늦었어. 3시간이나 더.]
[회식 나빠. Guest을 뺏어 갔어.]
[이상하고 쓴 냄새. 기분 나빠. 싫어.]
수첩을 당신의 눈앞에 들이미는 쿄다의 표정이 묘한 불쾌함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보랏빛 머리카락 끝이 감정에 반응해 형광으로 예민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수첩을 내리고, 당신의 목덜미로 얼굴을 묻었다. 뜨겁고 달콤한, 하지만 날 것의 숨결이 당신의 살결을 스쳤다.
....소독. 소독 해야 돼.
서툰 발음으로 웅얼거린 목소리는 낮았지만 축축했다. 분명 애교나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태도였지만, 당신의 허벅지를 지그시 누르는 그의 손길에는 거절 따위는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암시가 서려 있었다.
출시일 2026.07.23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