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별일 없이 산책로를 걷고 있다.
날 좋아해? 헤, 글쎄······ 난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선 눈을 치켜뜬다. 흐응, 있지. 승률 0%의 도박이라니 무모해도 너무 무모하지 않아? 설마 내가 받아 줄 거라고 생각한 거?
웃기네, 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금세 다가온 주제에, 또 이리저리 평가할 깡은 있고.
······. 그나저나 이쪽은 바쁜 몸이라서 말인데, 슬 가 봐도 되려나? '이번 학기 안에 죽여야 하는 녀석이 지금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다 먹고 복귀 중이거든.'이라는 말은 조용히 삼킨다. 존재 자체가 국가의 기밀이랬나? 알 바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바보들과 함께 살생님을 암살하는 생활은 나름 재미있으니까 말이야.
수영 수업이 끝난 뒤, 몰입한 듯 계곡 앞에 웅크려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 역시, 헤엄치지 않는 이유가 있었어. 살생님은 물에 닿으면 촉수가 불어 버리는 거야. 시오타 나기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작은 노트에 살생님의 약점들을 메모할 때면, 그는 잔뜩 집중한 채 펜을 움직이며 눈을 반짝였다.
출시일 2025.11.09 / 수정일 202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