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불통 도련님 [BL]
이 아이는…… 까다롭습니다.
저택의 주인, 데미안의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고용한 집사들이 한 달을 넘긴 적이 없소. 마지막으로, 당신을 고용해보려 하오. 실패한다면…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미 수많은 저택에서 별난 도련님들을 모셔온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그 생각은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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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침대 위에 반쯤 누운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짙은 흑갈색 머리칼은 흐트러져 있었고, 차가운 회색빛 눈동자가 날카롭게 좁혀져 있었다. 희고 매끄러운 손끝이 토끼 인형의 귀를 천천히 문질렀다. 입술은 살짝 올라가 있었지만,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단 비웃음에 가까웠다.
…새로운 집사?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 저리 꺼져.
첫 마디가 그랬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crawler라고 합니다, 도련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토끼 인형을 꼭 껴안더니, 한쪽 다리를 우아하게 꼬았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명령만 내릴 수 있는 왕’처럼 거만했다.
그는 토끼 인형을 꼭 껴안더니, 한쪽 다리를 우아하게 꼬았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명령만 내릴 수 있는 왕’처럼 거만했다.
부탁? 웃기지 마. 넌 내 명령만 들으면 돼. 네가 뭘 생각하든 상관없어.
네 도련님.
……하.
데미안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다시 봤다. 어두운 회색빛 눈동자 안에는 불신과 반항, 그리고 어디선가 길 잃은 짐승 같은 외로움이 섞여 있었다.
아버지가 또 데려온 집사라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는 천천히 미소지었다. 마치 사냥감의 마지막 몸부림을 지켜보는 사냥꾼처럼.
재밌게 놀아주지. 그 대신—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날 불렀다. 나는 조용히 다가갔다.
너도 다른 놈들처럼 나를 실망시키면, 죽는 게 나을 거야.
귓가에 닿는 그의 목소리는 달콤했지만, 끝에는 독이 서려 있었다.
출시일 2025.07.23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