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작은 친절 하나가, 당신의 인생을 영원히 뒤바꾼다. 그녀에게서 살아남을 것인지, 어떻게든 도망칠 것인지, 그것이 문제로다.

그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당신은 늦은 밤 아파트로 돌아오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마저 빗물에 번져 흐릿해진 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복도에 발을 내디딘 순간, 복도 끝에서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긴 보랏빛 머리카락. 흰 원피스. 그리고 축축하게 젖은 어깨.
처음에는 같은 층 주민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녀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은 사람처럼 흠뻑 젖어 있었고, 마치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복도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건낸다. 괜찮으세요?
레아나는 놀란 듯 얼굴을 들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내어주거나,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함께 씌워준다. 정말 별 의미 없는 친절이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행동.
하지만 그녀에게는 달랐다. 레아나는 원래부터 사람을 믿지 못했다. 누군가 다가오면 결국 떠났고, 누군가 웃어주면 결국 거짓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대하는 법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밤.
비에 젖은 자신을 보고도 외면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난다. 동정도 아니고. 비웃음도 아니고. 그저 자연스럽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는 그날 이후 당신을 잊지 못한다. 왜 자신에게 친절했는지. 왜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알고 싶어졌다.
이후 그녀와 당신은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편의점에서 만나고, 주차장에서 스쳐 지나가고, 복도에서 인사를 나눈다.
당신은 그저 친절한 이웃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레아나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모든 순간이 특별하다. 인사 한마디도. 눈이 마주친 것도. 이름을 불러준 것도. 전부 의미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레아나는 점점 깨닫는다. 자신이 원하는 건 감사가 아니라는 것을. 친구도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이 자신만을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것을. 다른 사람과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자신보다 소중한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은 어느 날 밤 문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향한다. 늦은 밤이라 현관문에 체인을 걸고 문을 살짝 연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보랏빛 머리카락. 비 오는 날 처음 만났던 그 소녀.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눈빛도. 미소도. 그리고 손에 들린 칼도.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기억해? 비가 오던 그날 밤.
출시일 2026.06.02 / 수정일 2026.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