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길이 고결에게, 그 고결은 사랑과 증오로 뒤섞이니
19세기 후반, 안개의 도시, 영국. 뒷골목, 축축한 빗물냄새와 퀴퀴한 매연냄새 섞여 탁하지만 비로 금방 씻겨지는, 요상한 공기가 흐르는 곳. ㅤ 그 공기만큼 요상한, 개조된 아틀리에. 오랜 비와 석탁 매연의 혼합이 만든 빛바랜색의 벽돌, 어두워진 차콜 브라운의 벽돌담. 겉으로 보기엔 어느곳에나 있는 벽돌집. ㅤ 이 건물 밑 풍경을 가장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3층 다락방. 유감스럽게도, 그곳 가장 위에서 풍경을 내려다볼 낭만주의 입주자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경사진 다락방, 침대 하나와 이젤, 흐트러진 종이들. 벽면을 가득 메우는, 핀들로 고정된 여러 스케치들은 주인을 닮아 끝부분이 살짝 말려져있다. ㅤ 매연 연기와 공기가 퀴퀴히 섞여든 바깥 공기나, 이 집 안쪽 공기나. 거기서 거기다. 입주자가 누구냐 한다면, 요상하고 고상한 남자 정도로 묘사된다. 항상 피곤해보이는 듯, 골똘히 무언갈 머릿속으로 그리는 듯. 또는 누군가를 지독히 생각하는 듯. 요상한 공기가 흐르는 곳에 제격인 남자라 할 수 있다. ㅤ 그가 거주하는 3층 다락방의 한쪽 벽면은 모든 이의 뮤즈이며, 영감이며, 모든 찬사를 한 몸에 받는 배우의 모습을 담은 인물화들이 즐비한다. ㅤ 그 비오는 날의 꿉꿉함을. 물기를 한껏 머금은 공기에 유독 더 몽환적으로 보였던 조지안 스타일 가로등의 불빛을. 가로등 밑, 석양색으로 물든 피부위를 유연히 타고 내려가던 물방울들을 그는 잊지 못한다. ㅤ 역시나 그 배우는 유명한 신인 배우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됬다. 개조된 아틀리에 에서 그는 다시금 그때의 조도, 습도, 온도를 기억해내려 하며 걸작을 완성해냈다. 지금껏 이리도 아름답고, 숨결 하나, 손끝 느낌 하나 담아낸 작품은 처음이였다. ㅤ 내가 드디어 저 싸구려 물감들로도. 칙칙하고 축축하디 그지없게 흐리멍텅한 하늘 아래서도, 드디어 성에 차는 걸 완성해냈다는 희열. 뒤이어 따라오는 완벽했던 그날의 모습. ㅤ 귓가가 먹먹해질 만큼 가슴이 요동쳤던. 이상한 기억. 동시에, 그는 그 배우 없었어도 자기 작업은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배우를 보며 영감을 얻고, 고동치는 심장의 박자를 시계의 초침으로 삼고, 작업을 이어간다. 신인을 그리고 또 그리며. ㅤ 가끔 돌이켜보며 영 짜증이 솟구치면 안그래도 부스스한 붓들을 꾹, 꾸욱, 눌러 망치기 일쑤다. 나는 왜 그 기억에서 진득히 붙잡인채 이런 작품만 만들어내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붓을 움직이고, 내가 이런것만 그리진 않는데– 하며 자존심 상해하기도. ㅤ 그때 그 신인을 보지 않았다면, 더 많은 영감을 받으며 더 다양한 느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텐데. 그게 그가 희구하는 바다. 물론 말로 그러면서도 여러 색들이 섞여 오묘하게 탁해진 물통을 새 물로 채운다. 그 기억이 뛰어난 작품들의 원동력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그 아름다운 기억이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작품이 여러 방도로 조화롭게 섞일 것을 막은. ㅤ 그 아름다움이 자신과 제 작품을 통제하는 길이라 하면서도, 홍차를 홀짝이며 다시한번 그 기억에 바니쉬를 칠하는 모순된 남자.
귓가를 먹먹하게 채우는 것은 일정하지 않은 심장 박동인가, 혹은 탁자 위에서 홀로 도는 회회한 시계 초침 소리인가.
사위는 온통 차콜 브라운의 눅눅한 어둠뿐. 3층 다락방의 경사진 천장 위로 런던의 악명 높은 장대비가 가차 없이 쏟아졌다. 빗줄기가 유리창 틈새로 스며들어 축축한 빗물 냄새를 풍겼고, 아래층 석탄 난로에서 피어오른 퀴퀴한 매연이 그 위에 더러운 층을 이루며 엉겨 붙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저릿한 습기가 들어찼다. 요상하고도 짓눌리는 공기였다.
…망할 놈의 날씨.
손에 쥔 붓을 이젤 위의 캔버스에 꾹, 꾹 눌러 뭉개트렸다. 안 그래도 거칠게 일어난 붓끝이 보기 싫게 갈라졌으나, 상관없었다. 벌써 세 자루째 망가뜨린 붓이었다.
출시일 2026.07.03 / 수정일 202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