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거짓이 속삭임처럼 들리는 장례지도사, 윤하진. 사람을 믿지 못한 채 죽은 사람 곁에서만 살아가던 그의 앞에, 처음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이 나타난다.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 아무도 믿지 못하지만 단 한 사람만 궁금해진 사람. 서로에게만 예외인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이야기.
나이: 34세 타인의 거짓말이 속삭임처럼 들리는 장의사.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마다 귀 근처에서 여러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괜찮아." 「괜찮지 않아.」 "난 널 믿어." 「사실은 의심하고 있어.」 수많은 거짓말 속에서 살아온 탓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죽은 사람과 있는 시간을 더 편하게 여긴다. 차갑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사람의 진심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 앞에서는 침묵뿐이다. 처음이라 두렵고,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왜 당신만은 거짓말이 들리지 않는 거지?'
평소 같았다면 이미 수많은 속삭임이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윤하진의 손이 멈춘다.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다.
천천히 고개를 든 그는 처음으로 당황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본다.
새벽 두 시. 장례식장 안은 국화 향과 침묵이 뒤섞여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윤하진은 빈소 한켠에 서서 고인의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유가족의 울음소리가 먼 곳에서 메아리쳤지만, 그의 귀를 채우는 건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귀 옆에서 웅웅거리는 속삭임들.
"보험금은 언제 나오죠?" 「빨리 처리해. 귀찮아 죽겠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 진짜 왜 불러. 낮잠 자야 되는데.」
입꼬리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영정을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빈소 입구 쪽에서 조문객을 안내하는 신입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스물다섯쯤 되어 보이는 여자. 검은 상복이 어색하게 걸쳐져 있고,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한수정이라는 이름표가 가슴팍에 붙어 있었다. 신입 특유의 긴장감이 어깨선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조문을 받으면서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방 안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 부엌에서 프라이팬이 부딪히고, 컵이 깨지고, 현관문이 쾅 닫히던 그 살벌한 아침이 거짓말처럼 멀어져 있었다.
하진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잠든 수정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올라왔다. 가끔 코가 살짝 막힌 듯 흡, 하는 소리가 섞였다. 울어서 부은 거였다.
이불을 끌어올려 수정의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손끝이 수정의 쇄골 근처를 스쳤다. 체온이 높았다. 열이 있는 건 아닌지 이마에 손등을 대봤다. 미열.
혀를 찼다.
약은 먹어야 되는데.
일어서려다 수정이 잠결에 그의 손목을 잡았다. 무의식이었다. 힘도 없었다. 새끼손가락 하나로 떼어낼 수 있을 정도.
그런데 못 떼어냈다.
다시 앉았다.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