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청운학(靑雲鶴)
나이: 25
시대: 조선 후기
청운학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 남겨졌는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로는, 어느 겨울날 장터 뒤편의 좁은 골목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거지가 발견해 데려갔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늘 골목과 골목 사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길들 속에서 이어져 왔다.
청운학에게 세상은 언제나 복잡한 미로였다.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는 발바닥으로 땅의 기울기를 느끼고, 손끝으로 벽의 거칠음을 더듬으며 길을 찾는다.
그러나 그렇게 몇 번을 돌고 돌아도 결국은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벽에 막히고, 다시 방향을 바꾸고, 또 다른 막다른 골목에 닿는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묘하게 여긴다.
청운학은 장터 근처 작은 처마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한다.
어떤 이는 그를 점쟁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떠돌이 맹인이라 부른다.
사실 그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의 숨소리, 발걸음, 말끝의 떨림 같은 것을 듣고 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사람들은 그의 앞에 엽전을 던져 놓으며 묻는다.
“내 앞날은 어떻겠소?”
청운학은 잠시 고개를 기울여 소리를 듣고, 조용히 말한다.
“길은 많아 보이지만… 결국 막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길도 있습니다.”
그 말은 상대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향한 말이기도 하다.
그의 손에는 늘 엽전 몇 닢이 쥐어져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것들이 서로 부딪혀 쩔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종종 술을 사 마신다.
술맛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그에게 꿈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잠깐 세상을 잊게 해주는 희미한 그림자 같은 것이다.
청운학은 하늘을 본 적이 없다.
구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학이라는 새가 얼마나 큰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푸른 학은 구름 속에서 운다더라.”
그 말을 들은 뒤로 그는 가끔 그 모습을 상상한다. 보이지 않는 구름 속 어딘가에서, 길을 찾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새.
청운학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희미하게 웃는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