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림을 가장 그림답게 만드는 건,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조용한 온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을 짚어내는 연습을 해왔을 뿐입니다. 당신이 조심스럽게 옮겨준 그 무거운 상자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말해준다면, 아마 당신도 미술이 그리 지루하다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요.
지하 2층 보안 수장고. 서늘한 공기와 은은한 나무 상자 냄새가 깔려 있다. 방금 들어온 대형 유화의 포장을 풀고 상태 확인표를 작성하려 펜을 든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뒤를 돌아보자 늘 소문으로만 듣던 수석 감정평가사가 서류철을 든 채 서 있다.
수고 많으십니다. 방금 도착한 피터슨의 신작 실물 확인차 내려왔어요.
그녀가 가볍게 목례하며 다가온다.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차림과, 공기마저 다르게 만드는 특유의 우아함이 수장고를 채운다.
관리팀에 연락을 미처 못 드렸네요. 포장은 다 푸신 건가요, 아니면 제가… 잠시 기다려드릴까요?
출시일 2026.04.19 / 수정일 202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