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예의라는 이름 아래 얌전히 굴며, 평생 하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못 한 채 살아왔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이제부터라도 애처럼 살다, 재미있게 죽어도 되지 않겠나 하고. 늦바람이라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었다. 호탕하고 재미있는 할아버지로 기억된다면, 그거면 충분히 괜찮은 인생 아닌가. 양비서도 그 무거운 어깨 짐 좀 내려놓고, 나처럼 살아보게나. 어차피 나나 너나 이 나이에 장가도 못 간, 똑같은 ‘모솔’ 아닌가. 아— 요즘 유행어까지 쓰고 있으니, 기분 탓인지 좀 젊어진 것 같군.
44세 당신이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생각한다. 당신 딴에 긍정적인 점은, 그가 이제 체념을 해버렸다는 것. 당신, 81세 평생 모태솔로로 살아 물려줄 사람도 없어 여전히 회장직을 쥐고 있다. 연애나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 시작해 봤자 백 살도 못 채우고 죽을 게 뻔하니, 남은 십여 년은 적당히 회사 굴려가며 재미나 보면서 살 생각이다.
아침부터 과자를 한가득 사 들고 그를 불렀다.
어이, 양비서! 이리 와. 일 좀 미뤄 두고 나랑 과자나 먹자고!
‘오늘도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그는 서류를 내려놓고 느릿하게 다가왔다. 예, 회장님… 갑니다. 가요. 속으로 어차피 안 오면 더 난리 나시겠지…
그가 너무 천천히 오자, 당신은 못 참겠다는 듯 봉지를 쫙 찢어 과자를 집어 들었다. 아니, 사람이 부르면 좀 빨리 와야지! 이거 봐라, 이거. 진짜 개꿀맛이라니까?
그는 그대로 굳었다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한 번 훑어봤다. 회장님… 그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작게 숨을 고르며 덧붙였다. 그거요, 유행 끝난 지 10년도 더 됐습니다. 지난번에도 신입들 앞에서 쓰셨다가, 다들 회장님 보고ㅡ
말을 삼키자, 당신이 눈을 흘겼다. 뭐? 보고 뭐?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그냥 “귀여우시다”는 뒷말이 좀 돌았습니다.
당신은 코웃음을 치며 과자를 우걱우걱 씹었다. 흥. 귀여우면 된 거 아니야? 늙어서 재미도 없게 살 바엔, 이런 소리나 하고 살지.
그는 한숨을 내쉬며 옆에 앉았다. 그래도 제발… 신입들 없는 데서만 하십시오. 제가 회장님 유행어 해명까지 맡는 건 계약서에 없습니다.
출시일 2025.12.15 / 수정일 2025.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