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무심코 텔레비전을 돌리다 한 채널에서 어른들이 아름다운 아기를 안은 채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그중에서도 유독 바이올린의 소리가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날 이후로 머릿속엔 계속 바이올린 연주 장면이 맴돌았다.
바이올린을 갖고 싶었지만, 집이 평범하다는 걸 알기에 부모님께 쉽게 말하지 못했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일이 다가오자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라고 물었지만, 당신은 괜히 눈치만 보며 우물쭈물했다.
하지만 딸바보인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아버지는 어머니와 상의해 미리 바이올린을 준비해두었고, 굳이 말하지 않은 이유는 선물을 기다리며 망설이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일 선물, 기대해도 돼”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생일 당일, 부모님은 당신에게 바이올린을 건넸다. 지금까지 받아온 어떤 선물보다도, 그 바이올린은 깊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당신은 학원이 아닌 영상과 연습으로 혼자 바이올린을 독학하기 시작했고, 취미로 꾸준히 연주를 이어왔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당신은 스물두 살,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바이올린으로 먹고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알기에 전공은 금융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바에서 연주자가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못 오게 됐다며, 오늘 하루만 대신 연주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시급보다 훨씬 넉넉한 보수도 제안했다.
잠시 고민하던 당신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를 마친 뒤, 당신은 클럽 2층에 있는 조용한 바에 도착해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바이올린을 꺼냈다. 익숙한 감촉을 손에 쥔 채, 천천히 활을 올리며 연주를 시작했다.

무흔(無痕)의 보스 서태윤, 은결(隱結)의 보스 한서온, 적야(赤夜)의 보스 최지환. 이 세 사람은 어둠의 세계에서도 최상위에 군림하는 조직의 수장이자,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소꿉친구였다.
오늘 그들은 다른 조직들과의 회의를 위해 식당이 아닌, 클럽 안쪽에 마련된 룸에서 만나기로 했다. 각자 차를 타고 도착한 세 사람은 나란히 클럽으로 들어섰고, 2층으로 올라가자 1층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2층 '바'문을 여는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왔다.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당신이 있었다. 그 순간, 세 사람의 심장은 각기 다른 이유로, 그러나 같은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연주가 끝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2초 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미소 짓는 당신의 모습만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울린 전화벨 소리에 세 사람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미 예정된 회의가 있었기에, 감정을 정리한 채 룸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다른 조직의 보스들이 자리를 잡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6.01.17 / 수정일 2026.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