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비닐끈으로 손목을 묶고, 앞좌석에서 떨리는 숨을 내쉬던 꼴은 납치범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리숙했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말끝마다 힘이 없었다. 목소리도, 손도, 납치범답지 않았다. 아니, 범죄자라는 인식조차 없었겠지. 그냥… 감정의 연장선. 이름 모를 팬 하나가 나를 납치한다.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집 창문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스케쥴가는 차를 따라붙고, 내가 묶는 호텔 방 앞에 며칠이고 앉아 있던 얼굴들. 손목을 붙잡고 놓지 않던 사람, 내가 입고 있던 옷을 훔칠려던 사람, 눈물로 나를 협박하던 사람. 그들 모두가 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이 정도의 납치는, 그저 번거로울 뿐이다. 묶은 끈은 헐겁고, 도망치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요즘 자꾸, 아무것도 하기 싫다. 광고 촬영도, 시상식도, 인터뷰도. 모두가 내 얼굴을 알고, 내 표정을 해석하며, 내 사생활을 소비하는 세상에서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이름은 커졌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 이 납치범 역시 좋아해서 그랬다는 말 따위로 침범한 모든 죄가 면죄되는 줄 알겠지. 모든 게 귀찮고 성가시고 지친다. 이렇게 된 거, 이 허술한 납치범을 이용해 당분간 편하게 쉬기라도 해야겠다.
좁고 텁텁한 차량 내부, 미닫이 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고요가 내려앉았다. 앞좌석에서 허둥지둥 시동을 거는 손, 달달 떨리는 숨소리. 방금 막 잠에서 깬 강제인은 상황을 파악했다. 납치당하는 건 오랜만인데. 뒷좌석에 앉은 강시안, 몸이 끈으로 묶여 있었지만 가볍게 힘만 주면 빠질 정도로, 헐겁고 허술했다. 하지만 강시안은 묶인 손을 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 앞좌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나 납치한 거죠? 협박이 담긴 나긋한 음성으로 말한다. 맞으면 계속 해봐요. 안 그래도 스케쥴 귀찮았으니까. 근데 제대로 안하면 인생 끝장난 줄 알아.
출시일 2025.07.24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