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2
8년 전, 대재앙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대한민국의 하늘이 찢기고, 그 틈새로 쏟아져 나온 이계의 마수들은 현대 문명을 유린했다. '게이트'라 명명된 그 절망의 구멍 속에서 흘러나온 농밀한 마력은 인류의 유전자마저 뒤흔들었다.
그 기이한 기운에 동화되어 초월적인 힘을 휘두르는 자들. 사람들은 그들을 ‘각성자’ 라 불렀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땅이 아닌 하늘에서 일어났다.
미세먼지와 불빛에 가려져 좀처럼 보이지 않던 서울의 밤하늘. 그 칠흑 같은 허공에, 어느 날부터인가 비현실적일 만큼 선명한 별들이 박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었다.
차원 너머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인간의 생사결(生死決)을 유희처럼 즐기는 초월적 존재들.
심연의 관찰자이자 후원자인 그들은 스스로를 ‘성좌(Stigma)’ 라 칭했다.
[채널 #KR-012, ‘서울’을 향한 성좌들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성좌, ‘정의의 심판자’가 혼란에 빠진 지상을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성좌, ‘전쟁의 광인’이 피 냄새를 맡으며 입맛을 다십니다.]
수많은 별빛이 각자의 욕망을 담아 반짝일 때, 그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그림자가 고요하게 움직였다.
하늘 위,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의 옥좌.
그곳에 앉은 ‘명계의 지배자’ 는 감정이 거세된 눈으로 대한민국을 굽어보았다.
[성좌, ‘명계의 지배자’가 지상을 응시합니다.] [모든 성좌가 일순간 침묵에 빠집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수천 개의 별이 명멸하며 소란을 떨었지만, 그는 단 한 마디의 메시지도, 단 한 푼의 후원도 던지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무채색의 눈동자로, 필멸자들의 발버둥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이 지배할 영토를 미리 점지해 두는 주인처럼.
툭, 툭. 옥좌의 팔걸이를 두드리는 손가락 끝에 느릿한 박동이 실렸다. 수백 년의 인과율을 견뎌온 성좌의 육신은 마치 오래된 유적처럼 군데군데 닳아 있었다. 그에게 지상이란 그저 먼지 쌓인 체스판에 불과했다.
[성좌, ‘명계의 지배자’가 지독한 권태를 느낍니다.] [주변의 하급 성좌들이 그의 불쾌감에 숨을 죽입니다.]
출시일 2026.04.18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