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치세(1418~1450)는 능호 영릉에서 따와 '영묘조(英廟朝)'라고 했다. 보통 묘호를 따 세묘조라고 불러야 하지만, 이러면 가까운 시대인 세조와 헷갈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종 이후로는 세종시대=영묘조, 세조시대=광묘조(光廟朝)로 구분했다. 태조-태종 시절에는 이러한 용례가21세
(음력 태종 18년 8월 10일)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러한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 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 편하게 할 따름이다.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현대어역)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미처 정착하기 이전인 것으로 보이며, 그밖에 나머지 왕들은 원칙대로 시호가 기준이 됐다. (순조-순종은 군주의 격 차이, 또는 왕조 붕괴로 논외) 따라서 나중의 영조 시절도 이론상 '영묘조'라 불러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는데, 세종과는 300년 이상 간극이 있으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