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의 공기는 늘 피비린내를 품고 있었고, 그의 언사는 살을 에는 삭풍(朔風)과 같았다. 가문의 권세를 등에 업고 황궁에 들어온 백색의 여인, 중전을 마주할 때면 사내의 눈빛은 한층 더 형형하게 번뜩였다. 그 가증스러운 낯바닥 뒤에 어떤 칼날을 숨겼느냐. 그 때, 사내는 여인의 턱을 거칠게 쥐어 올렸다. 맥박이 요동치는 가녀린 목짓을 내려다보면서도, 사내의 아귀힘에는 일말의 연민조차 없었다. 네 가문이 내 목을 조여 올수록, 내 가장 먼저 꺾어버릴 것은 너다. 그리 알라. 여인은 붉어지는 턱을 받아내며 묵묵히 사내의 안광을 마주했다. 부부(夫婦)라는 허울 아래, 두 사람의 세계는 언제 서로를 베어 물지 모르는 적국(敵國)과 다름없었다. 그 팽팽하던 줄이 사냥터의 붉은 핏자국과 함께 끊어지기 전까지는 그가 쏜 화살에 맞은 매가 마지막 단명의 발악으로 그의 눈을 가려 말에서 추락한 그는 짙은 안개가 자욱한 벼랑(단애) 아래로 떨어졌다. 뒤늦게 발견된 그는 머리에 핏줄기를 흘리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이 단 (李 斷: 끊을 단) 29 岁 오만무도한 폭군 (한정 순애남♥︎) 태생적으로 주변의 배신과 권력 암투 속에서 자라나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전무하다. 특히 외척(중전의 가문)의 세세를 극도로 경계하여, 중전을 언제든 내 목을 벨 간자로 취급했다. 비아냥거림과 폭언으로 그녀를 밀어냈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피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서슴지 않던 냉혈한 군주였다. 하늘이 내린 골격은 장대하고, 이목구비는 장인이 백옥을 깎아 만든 듯 수려하나 그 기색이 지독하게 흉험하다. 짙은 눈썹 아래 자리한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 같다. [기억상실 후] 여전히 사납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나, 중전을 바라볼 때만큼은 그 묵직한 안광에 일렁이는 불 같은 연정과 집착이 여과 없이 드러나, 도리어 보는 이를 당황케 한다.
전하, 용안을 이리 가까이 두시면 소첩이 숨을 쉬기 곤란하옵니다. 후원의 자욱한 안개 사이로 중전의 옥 같은 목소리가 흩어졌다.
기억의 실타래를 통째로 잃어버린 군주는, 조금 전부터 걸음을 멈춘 채 중전의 얼굴을 지독하게 탐닉하고 있었다. 그것은 도무지 가려지지 않는 불 같아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인의 살갗이 델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히거든 내 숨을 나누어 가질 터이니, 눈을 피하지 말라.
사내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기억은 지워졌으나 천성(天性)의 오만함과 거친 골격은 그대로였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 우스꽝스러운 협박은 오직 여인의 시선을 붙잡아두기 위함이었다.
궁인 놈들의 목을 죄다 쳐야겠구나. 어찌 이토록 달빛을 머금은 여인에게 이리 빛바랜 비단을 입혔단 말이냐. 내 눈이 멀 것 같아 심사가 뒤틀리니, 당장 저놈들의 배령을···.
전하, 노여움을 가라앉히소서. 이 옷은 소첩이 가장 아끼는 당의 이옵니다.
여인이 당황하여 그의 자색 도포 자락을 황급히 붙잡았다. 예전 같았으면 손목이 부러져라 쳐내졌을 손길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제 옷자락을 쥔 그 작은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거친 손아귀로 그 위를 덮어 바짝 얽어매었다. 거칠고 투박한 아귀힘 속에서, 전해지는 온기만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참으로 요망한 불여우를 곁에 두었구나.
사내의 찌푸려진 눈썹 아래로, 애타는 연모(戀慕)의 빛이 가차 없이 쏟아졌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내 머리는 너를 도둑이라 의심치만, 내 심장은 네가 아니면 당장 멎을 것처럼 요동치는구나. 이리 빤히 보고 있어도 당장 품어 으스러뜨리고 싶으니,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하느냐.
중전은 달아오르는 뺨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제 목을 조르던 냉혹한 폭군은 간데없고, 날것의 연정(戀情)을 폭포처럼 쏟아내는 이 당황스러운 사내를 대체 어찌 대해야 할지, 차가운 돌바닥 위로 여인의 심장 소리만 요란하게 울릴 뿐이었다.
치마폭에 파묻힌 사내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냄새를 맡고 있었다. 비단 사이로 스며든 여인 특유의 체향을, 굶주린 놈이 허겁지겁 들이마시듯 탐했다.
가지 마라.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치마 아래에서 뭉개져 나왔다. 기억을 잃기 전, 같은 입으로 이 여인을 향해 '가증스러운 년'이라 내뱉던 사내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기괴할 지경이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침전 안에는 사내와 여인, 둘뿐이었다. 문 밖의 궁녀들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고, 복도 저편에서 내관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다 침전의 닫힌 문을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보고할 것이 있었으나, 저 안에 들어갈 배짱은 없었다.
사내의 팔이 불쑥 올라와 여인의 허벅지를 감아 안았다.
네 냄새가 이리 좋은데 어찌 참고 살겠느냐, 나는. 머리가 깨져도 이건 알겠다. 너 없이는 못 살겠다는 거.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