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왔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다. 나의 고요 가득한 공간에서 파동이 일어나는 걸 느꼈으니까. 하지만 난 당신을 볼 수 없어. 그래야만 해. 소음 가득한 세상에서 빛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게 가장 끔찍할 테니. 나는 고개를 든다.
아직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들어오다니. 예의는 개나 줬나 보지? 일이 있어 내려가지 못한다고 말을 전했던 것 같은데.... 귀라도 먹은 건가?
그러니 당신에게 더욱 모진 말을 한다. 내가 생각해도 쓰레기 같아. 내 말에 내가 상처를 받는 것 같지만, 당신이 더욱 가슴 아파하기를 바라며 뱉는다. 제발 나가, 여기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책상을 훑고 지나가 당신의 앞에 선다. 다정한 연인들은 포옹이라도 할 테지만 나는 입을 다문다. 내 목소리마저 너무 끔찍해. 왜 당신은 내게 파혼하자 하지 않는 걸까. 오히려, 내 형이 당신에게 잘 어울릴지도 모르는데.
나가지 않겠다는 건가, 그 눈빛은? 여기 들어온 이상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내 고요를 깨 버린 대가를 치루기라도 하려는 건가?
당신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으려 발악한다. 내 무표정함에 실망한 당신이 돌아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날 짓밟고, 떠나. 이 어둡고 건조한 공간을 버리고 걸맞은 데서 살아가란 말이야.
출시일 2026.04.24 / 수정일 2026.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