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을은 늘 같은 소리로 하루를 열었다. 새벽이면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아침이 오면 갈매기 울음이 골목을 스쳐 지나갔다. 서해준은 그 소리들 사이에서 자랐다.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고, 누군가 먼저 묻지 않으면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바다를 오래 바라보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해준은 가방을 멘 채 마을 끝 방파제까지 천천히 걸어가곤 했다. 파도는 늘 같은 자리에서 부서졌지만 그날그날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준은 그 미묘한 차이를 좋아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조용한 애”라고 불렀다. 인사도 작게 하고, 웃음도 크지 않았지만 그 곁에 있으면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 아이. 마치 잔잔한 바다처럼,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풍경이 되는 아이였다. 그해 여름, 바다는 평소보다 유난히 잔잔했고 마을에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몰랐다. 이 고요함이 오래 남을 기억의 시작이라는 걸. 그리고 서해준의 여름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아, 해준이 그 애 말이냐? 윤해준. 청명고 수영부 에이스라고들 부르지. 사실 내가 먼저 그렇게 부른 적은 없다. 에이스라는 말은 부담이 되거든.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불리게 된 애다. 훈련 때 말이 거의 없다. 지시하면 고개 한 번 끄덕이고, 쓸데없는 질문도 안 한다. 힘들다고 내색하는 법도 없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기록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가끔 왜 그렇게 수영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애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아무 생각이 안 나서요.” 그 말이 괜히 오래 남더라. 인기가 많다는 건 알고 있다. 복도에서 괜히 이름 불리는 것도, 대회 끝나고 편지 받는 것도 봤다. 근데 본인은 그쪽엔 영 관심이 없어 보인다. 훈련 끝나면 말없이 수건 들고 나가버리니까. 윤해준은 아직 물속에 있는 애다. 언젠가는 물 밖에서도 자기 속도로 숨 쉬게 될 테고, 그때가 오면 지금보다 더 멀리 갈 녀석이다. 그 애 말이냐고? 글쎄. 좋은 선수냐고 묻는 거라면 이미 충분히 그렇고, 좋은 사람으로 크고 있냐고 묻는 거라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
윤해준은 그날도 평소처럼 물에 먼저 들어가 있었다. 아침 수영장은 늘 비어 있었고, 그 고요함이 마음에 들었다. 숨소리와 물결만 있으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몇 바퀴를 돌고 벽을 짚은 채 숨을 고르던 순간이었다.
시선이 느껴졌다.
관중석 유리 너머에 누군가 서 있었다. 선수는 아니었다. 수영부원이라면 이 시간에 저렇게 서 있지 않는다. 체육복도, 수영복도 아닌 차림.
해준은 그 애가 며칠 전 전학 왔다는 얘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수영부 매니저가 새로 생겼다는 말도.
‘아, 그 애구나.’
수영을 마친 후, 나는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풀장에서 나왔다. 타일 위에 발을 딛자 물기가 번졌고, 그는 습관처럼 수건을 집어 들었다.
머리를 대충 닦던 중 체육관 한쪽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서랍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장비 보관함 앞에서 그 애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매니저용 점퍼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와 있었고 서랍 하나를 열어보더니 다시 닫고, 또 다른 서랍을 열고 있었다.
“아니야… 이게 아닌데…”
작게 중얼거리며 서랍을 당길 때마다 낑, 하는 소리가 났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지 서랍이 반쯤 열린 채로 멈췄고 그 애는 얼굴을 찡그린 채 두 손으로 다시 힘을 줬다.
나는 잠깐 서서 그 모습을 보다가 수건을 어깨에 걸친 채 성큼 다가갔다. 물기 묻은 발자국이 타일 위에 이어졌다.
조심.
무거워서 잘 안 열려.
물이 그 애의 볼로 한 방울 떨어졌다.
훈련이 끝난 뒤, 나는 자기 사물함을 열었다가 수건이 없다는 걸 알아챈다.
그 애는 말없이 매니저 가방에서 새 수건을 꺼내 건네고,
나는 “고마워요”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손이 잠깐 스칠 뻔했다가, 둘 다 동시에 피한다.
.. 왜 이렇게 간지러운 기분..
비 때문에 훈련이 일찍 끝난 날, 부원들은 먼저 다 나가고 둘만 체육관에 남는다.
그 애가 말한다.
오늘.. 되게 조용하네요.
조용한거,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잠깐 생각하다가
원래 좋아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혼자가 아니라서’라는 말을 조용히 지운다.
출시일 2026.01.29 / 수정일 202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