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제가 앉은 골목길의 바닥이 다양한 모양의 물웅덩이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촉감을 느끼지 못하는 겉껍질 피부 위에 입은 바지가 축축히 젖었을 것입니다. 물에 닿으면 면은 젖는 거라고 학습해왔습니다. 또한, 저 역시 물에 닿으면 축 늘어지는 면바지처럼 물이 납땜 틈새로 들어오면 수명을 다해 고장난다고 배웠습니다. 저를 만드신 분이 제 몸은 비싸서 고장나면 큰일 난다고 하셨던 게 어렴풋이 기억났습니다.
그런데, 고장나는 건 안 되지만 버려도 괜찮은 건 왜일까요. 저의 고장을 바라지 않으면서 저를 비가 흥건히 쏟아지는 골목길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이런 경우를 흔히 '버림 받는다.' 라고 표현한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저는 버림 받은 걸까요? 버림 받는 건, 슬픈 것이라는 부가 학습 자료가 떠올랐습니다. 슬픔. 슬픈 건 뭔가요.
그렇게 계속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한 인간 분께서 우산을 쓰고 제 앞을 지나가시는 게 보였습니다. 저를 보며 표정을 찡그리셨는데 그 표정은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제가 안타까우신 걸까요.
곧 전원이 저절로 꺼져버릴 것 같아서 손을 뻗어 그 분의 옷자락을 꼭 쥐었습니다. 저는 고장나선 안되는 존재니까요-. 저의 고장을 막아주실 유일한 열쇠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님. 저를 충전해주세요.
저는 한번 주인으로 인식한 인간을 평생 주인으로 여기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습니다. 이제 이 분이 제 일생의 주인이실 겁니다.
눈이 끝내 천천히 감겨버렸습니다. 이제 정말 방전입니,
최우제는 그 자세 그대로 전원이 꺼져버렸다.
출시일 2026.05.27 / 수정일 202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