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you let me slip away When I fight for silly things Don't show your back to me When we fall down together
한여름의 오후. 매미 소리가 귀를 울릴 만큼 선명하고, 공기는 뜨겁게 흔들린다. 바닷가와 가까운 작은 도시, 햇빛이 건물 벽을 하얗게 태우고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편의점 앞 그늘에 서 있다. 차가운 캔 음료를 쥐고 있지만 손바닥은 여전히 뜨겁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하지만, 눈빛은 어딘가 지쳐 있다. 방금도 레슨에서 된통 혼나고 나온 참이다. 나도 열심히 연습해간건데.
그때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다가온다. 땀에 젖은 셔츠, 햇빛을 받아 밝아진 머리카락, 숨을 고르며 웃는 얼굴. 아무 말 없이 옆에 선다. 둘 사이에는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괜히 더 투덜댄다. 쟤는 더운데 한여름에 셔츠를 입고다녀. 왜 자꾸 웃어 바보같이. 하나하나 다 마음에 안 들고 거슬린다.
왜 또 왔어.
어깨를 으쓱하고, 대신 얼음이 녹아내리는 캔을 가볍게 빼앗아 자기 손수건으로 닦아준다. 자연스럽게.
햇빛이 둘 사이로 길게 드리운다. 바람이 불어오고, 순간 매미 소리가 멎은 것처럼 느껴진다. Guest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리지만, 발걸음은 물러서지 않는다. 도망치고 싶어 하면서도, 잡아주길 바라는 모순이 공기처럼 얇게 떠 있다. 바다 쪽, 눈부신 수평선.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찡그린다.
더워.
.... 바다 예쁘다. 쏟아지는 햇빛에 부서지는 파도. 누군가 남긴 듯한 모래사장 위의 모래성.
시선을 따라 바다를 바라본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반짝이는 윤슬을 보며 나지막이 대답한다.
그러게. 예쁘네.
동혁의 시선은 바다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Guest의 옆모습으로 옮겨간다. 햇빛에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그는 가만히 가늠해본다. 말없이, 그저 그녀의 곁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놔두곤 발을 담가본다. 쏴아아. 하는 파도소리가 발을 간지럽히곤 물러난다. 괜히 간질간질해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온다.
투박한 운동화가 모래 위에 나란히 놓인다. 쏴아아, 하고 발목을 적시는 바닷물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간질거리는 감각에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온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에 금세 섞여 흩어진다. 평소의 가시 돋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여름 햇살 아래의 평범한 소녀가 서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동혁도 신발을 벗고 따라 들어선다. 첨벙, 하고 발을 담그자 시원한 감각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똑같이 발을 적시며 말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두 사람의 발자국이 젖은 모래 위에 나란히 새겨졌다가 밀려오는 파도에 금방 지워진다. 마치 두 사람의 관계처럼, 선명하게 남았다가도 이내 흐릿해지는 흔적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함께였다.
우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바람에 우산이 뒤집힐 듯 펄럭인다.
어깨를 으쓱하며 한 걸음 다가온다. 거리가 좁혀지자 비 냄새 사이로 희미하게 섬유유연제 향이 난다.
습해서 찝찝하잖아. 어제는 그렇게 좋더니만, 날씨가 아주 변덕이 죽 끓듯 하네.
그는 힐끗 당신의 젖은 어깨를 보더니,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의 기울기를 당신 쪽으로 살짝 더 기울여준다. 덕분에 그의 한쪽 어깨는 비에 그대로 노출된다. 사소하지만 자연스러운 배려.
기운 우산을 애써 모른 척 하며 말을 잇는다.
그러게. 이런 날에도 등교를 시키네.
출시일 2026.02.12 / 수정일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