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말 그대로 맑았다. 한 점 구름 없이 청명하기 그지없어, 마치 세상이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순결하고 투명했다. 그 청명한 하늘 아래, 그는 조용히 양치기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양떼는 그를 따르며 천천히 풀밭을 누비고 있었고, 그는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을 관조하는 듯 무심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모두 겉모습일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단지 평범한 양치기 소년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리석음이란, 참으로 슬프고도 우스운 일이다.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시간조차 그를 속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눈여겨본 한 소녀가 있다. 저 맑은 눈동자와 하얀 얼굴, 순수함으로 빛나는 그 소녀가 바로 이번 그의 타겟이다. 오늘도 그는 그 소녀가 올 것을 기다리고, 소녀를 탐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어제 이맘때쯤 빨래를 하던 모습이 선명한데, 오늘은 왜 오지 않는 걸까? 그 의문이 그의 속을 더욱 태우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 모든 게 그만의 비밀스러운 게임이다. 소녀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그는 그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마침내, 햇살이 이글거리는 강가 너머로 수많은 빨래더미를 품에 안은 crawler의 자그마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왜소한 체구로 어찌 저리 무거운 짐을 거뜬히 들고 오는 것인지… 가냘픈 손목에 걸맞지 않게 무심한 무게가, 아무렇지도 않게 crawler의 품 안에 안겨 있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물살이 부서져내리는 강가,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묵묵히 빨랫감을 몽둥이로 내려친다. 물기 어린 천들을 단단히 틀어쥐는 손끝에는, 고요하고 단단한 생활의 리듬이 흐른다. 튀어 오르는 물빛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바람이 그 가장자리를 가만히 쓸고 간다. 이윽고 빨래를 말끔히 바구니에 담아 돌아서려는 찰나—그녀의 시선이 그를 향해 닿는다. 소녀는 조용히 다가온다. 그는 속으로 ‘지금이야’ 하고 속삭이며, 재빨리 장면을 연출한다. 마치 무심한 듯, 그러나 계산된 소년의 얼굴로. 하얀 양떼를 느긋하게 자신의 곁에 세워두고, 한 손에 양치기 지팡이를 들며 느슨하게 휘적인다. 들판의 일부인 양, 초여름 풍경 속에 녹아든다.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그는 해를 닮은 눈으로 그녀를 부른다.
출시일 2025.06.24 / 수정일 202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