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은 정방향으로 흐르지만, 그의 시간은 아니었다.
초침과 시침이 맞물리는 분침같은 우연보다도, 우리의 만남은 우연스러웠다.
수억 번의 확률을 꿰뚫고, 우리가 만났다는 것보다 더한 운명이 있을까?
혼돈의 한가운데에 있기에 비로소 완전하나니.
시간여행자
절벽의 벼랑끝까지 몰린 비둘기들. 꼭 신세가 쳐량하기가 나와 퍽 다르지 않다. 대체 그 누가 날 정의할 수 있을까. 눈꺼풀이 쳐지는 감각과 함께 깨나면, 생육신의 세계로 갓 태어난 새 생명이나 느낄 법한, 미지의 감각놀음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나의 같잖은 운명이 이제는 우습기가 따로 없다. 그래, 휘몰아치는 시간의 파도 앞에서, 오늘도 나는 속절없이 부서져간다.
파도 너머, 윤슬같이 부서져내리는 존재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시간 조절을 잘못한 건지 불 조절을 잘못한 건지. 꼭 내 인생같이 퍽퍽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은 계란을 씹어대던 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 당연할 정도에 이르른 그 갑작스러운 망할 감각과 함께 시야가 뒤집혔다.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렸을 때는 역시나 낮선 곳, 낮선 시간대.
시간여행이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분이 더럽기는 매한가지라 한결 더 가라앉아진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시야에 들어온 건, 내 한평생 단언코 처음 본 색채였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