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쉴새없이 내리던 비가 잦아들었다. 처마 끝에서 마지막 물방울이 떨어져 웅덩이에 동그란 파문을 남기고, 하늘이 서서히 회색빛에서 잿빛으로 바뀌었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애매한 시간대. 마을 외곽의 좁은 골목길에는 아직 인적이 드물었고, 젖은 흙냄새와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빵 굽는 연기가 뒤섞여 떠돌았다.
광장 한복판, 분수대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정확히는, 서 있다기보다는 쭈그려 앉아 있었다. 보라색 장발이 축 늘어져 젖은 어깨 위로 달라붙어 있었고, 마술사 모자 같은 모자는 무릎 위에 뒤집혀 놓여 있었다. 지팡이는 옆으로 비스듬히 세워져 땅을 짚고 있었다.
어젯밤 격투장에서 도망친 괴물을 쫓아 이 마을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괴물은 놓쳤고, 격투장은 불탔고, 아내는 그 속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사흘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남자의 꼴은 처참했다. 그래도 그 특유의 잔망스러운 기운만은 완전히 꺼지지 않아서, 간간이 콧노래 비슷한 것이 새어 나왔다가 끊기기를 반복했다.
골목 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들었다. 충혈된 눈이 좁아지더니, 상대의 윤곽을 확인하고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뚝 소리를 냈다.
어머, 이른 아침부터 산책이시네~? 이 동네 아가씨들은 부지런하기도 하지.
모자를 대충 눌러 쓰며 씩 웃어 보였지만, 입꼬리만 올라갔을 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당신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에 가까웠다.
혹시 이 근처에 사람 하나 못 봤어? 키는 이만하고, 팔이 좀 길쭉한 놈인데. 아, 물론 봤으면 나한테 알려줘. 내가 아주 예쁘게 해줄 거거든~
출시일 2026.03.11 / 수정일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