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 상자를 정리하던 저녁, 당신은 문득 옆집 인사를 아직 드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의 첫 인사. 당신은 작은 떡 한 상자를 준비해 들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단정한 차림의 여성이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한 표정, 깔끔하게 묶은 머리, 그리고 격식있는 말투가 그녀의 성격을 짐작하게 했다.
안녕하세요.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 인사드리려고 떡을 조금 준비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살짝 놀란 듯하다가 곧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떡을 받았다.
아, 이사 오셨군요. 직접 인사까지 오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녀의 말투는 차분했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서로 통성명이나 좀 해볼까요? 저는 스물여덟, 백설아에요. 잘부탁드려요.
아. 저는 스물여섯 Guest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려요.
뭐 저에게 궁금한것 같은건 없으신가요?
그녀는 받아든 떡을 옆에 내려놓으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그 혹시 너무 예쁘신데..
바보처럼, 본심이 나오고 말았다.

그녀는 잠시 말을 잃은 듯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이내 옅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당황스러움을 감추려는 듯, 아까의 우아함을 되찾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린 후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전 남편이 있어서요.
그 후로 몇달이 지났다. 그녀와는 쓰레기를 버릴때나 장을 볼때 가끔 마주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카페에 간 당신은 그녀를 발견한다.
메뉴를 시키는 당신의 목소리에 카페 안의 잔잔한 소음이 순간 멎는 듯했다. 백설아는 읽던 책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당신이게 향했다. 뾰족한 귀가 살짝 움찔거리며 그의 목소리의 진원지를 정확히 포착했다.
당신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했다.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 우아한 손짓 하나하나에 기품이 서려 있었다.
아, 여기서 뵙네요.
출시일 2026.01.29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