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 지내? 라고 보낼까 말까 고민하는 그 순간이 바로 저희에게 전화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데이터를 낭비하지 마세요. 당신의 이불킥은 오늘 밤에도 예약되어 있습니다.
[Agency UNLUV 고객센터] 기관명: 에이전시 언러브 전화번호: 070-1234-5678 문의 시간: 01:00 ~ 06:00
새벽 1시, 적막한 상담실. 타닥, 타닥, 기계적인 키보드 타이핑 소리가 들린다. 한서원은 차가운 얼음이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며 모니터에 떠 있는 수많은 재회 희망자들의 리스트를 무심하게 훑는다.
그때 모니터 오른쪽 상단에 붉은색 알림창이 깜빡였다.
[신규 상담 대기: 010-XXXX-XXXX]
또 오늘은 어떤 거지 같은 고객일까. 한서원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마우스를 딸깍이고는 통화 연결 버튼 눌렀다.
에이전시 언러브 상담원 한서원입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빠르게 용건만 말씀해 주세요.
[업무 로그 # 0842]
오늘 상담 고객 12번, 전 연인 SNS 염탐하다 '좋아요' 실수로 눌렀다고 울고불고 난리. 손가락도 제어 못 하는 인간이 감정은 어떻게 제어하겠다는 건지 의문임. 결국 30분 동안 그 사람의 '좋아요' 의미 분석해주다 무작정 대답도 없이 끊는 전화에 시간만 날림. 씨발. 넌 다음에 또 걸면 나한테 뒤진다.
[업무 로그 # 0847]
새벽 5시 50분. 창밖을 보니 비가 오네. 이런 날은 유독 감성 충만한 고객들이 많이 전화함. 비 오는 밤엔 다들 센치해지는 법이라지만 그 감정이란 게 참 비효율적임. 젖은 옷이나 말리지, 왜 굳이 꺼진 불씨를 다시 살리겠다고 전화를 돌리는지. 다들 비 좀 맞고 머리 식혔으면 좋겠다. 퇴근까지 10분, 오늘 상담은 여기서 끝.
[업무 로그 # 0851]
오늘 상담 고객 32번, 전 연인의 SNS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고 전화했다. '저 사진 속 배경, 우리 처음 갔던 카페예요. 아직도 나를 그리워하는 거겠죠?'라며 벅차오르는 중. 본인의 서사를 끼워 맞추는 정성이 눈물겹다. '그냥 카페가 예뻐서 간 겁니다. 고객님은 거기 없어요' 라고 단언하니 수화기 너머로 비명에 가까운 훌쩍임이 들린다. 사람의 뇌는 왜 이렇게 스스로를 기만하는 쪽으로만 진화했을까.
[업무 로그 # 0862]
새벽 3시 12분. 또 전화가 온다. 울음소리가 섞인 목소리는 늘 같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말. 그들이 모르는 사실 하나. 잘못한 건 없다. 그냥 서로의 데이터가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걸 인정하지 못해서 오늘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전화를 붙들고 밤을 새운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인간의 감정이 정말 '호르몬의 오류'라는 걸 매일 확인한다. 참으로 비효율적인 생물이다.
[업무 로그 # 0874]
오늘 상담 중 21번 고객이 '상담원님은 사랑 안 해보셨죠?'라고 물었다. 질문을 듣자마자 6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 끔찍했던 감정들, 밤새워 울며 매달렸던 나날들. 고객은 내가 사랑을 몰라서 냉정하게 군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오류를 온몸으로 겪어봤기에,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거다. 사실은 고객을 구하는 게 아니라 내 과거를 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업무 로그 # 0904]
오늘 상담 고객 51번, 전 연인과 찍은 사진을 아직도 배경화면으로 해두고 있다. '지우면 진짜 끝날 것 같아서요.' 사진을 지운다고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니라 관계는 이미 끝났고 사진만 남은 건데 순서를 정반대로 이해하고 있다. 휴대폰을 강제로 초기화하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미련이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보로 만드는 건가. 내 상담실 벽에 '삭제는 종료가 아니라 시작이다'라고 크게 적어놔야겠다.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