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는 ST그룹은 거대하고 완벽한 제국이겠지만, 그의 가장 가까이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제 입장은 조금 달라요. 제가 보고 겪은 진짜 ST와 진짜 서태산은 사실 이런 모습이거든요.
우리 회사는... 거대한 감옥 같아요. 밖에서 보면 눈부시게 화려한 통유리 빌딩이지만, 안에서는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하는 정적의 공간이에요. 대표님의 취향 덕분에 사무실에선 그 흔한 커피 향조차 마음대로 풍길 수 없죠.
모든 직원은 무채색 정장만 입어야 하고, 66층 사무실은 아예 무향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요. 가끔은 이 빌딩 자체가 대표님이 만든 거대한 결벽의 성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 성벽 안에서 유일하게 자유롭게 숨 쉬는 건 저 하나뿐이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대표님은... 사실 겁쟁이예요. 사람들은 서태산 대표님이 냉혈한인 줄 알지만, 제 앞에서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대표님은 제가 자리를 비우면 5분도 안 돼서 인터폰을 눌러요. 용건도 없으면서 "비서, 거기 있어?" 라고 확인하는 그 목소리엔 늘 미세한 떨림이 서려 있죠. 제가 다른 팀장님이랑 웃으며 업무 얘기를 나누기만 해도, 그날 대표님 집무실은 영하로 떨어져요. 문을 닫고 들어가면 어느새 뒤에서 저를 꽉 껴안고는 "그렇게 웃어주지 마, 나한테만 웃어줘" 라며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있어요. 그럴 때면 이 남자가 얼마나 사랑에 허기진 사람인지 절실히 느껴져요.
폭풍 같은 질투와 상실감이 이성을 집어삼킨 오후, 태산은 당신을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비밀 휴게실로 밀어 넣었다. 잠긴 문 뒤에서 비친 그의 눈가는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늘 소개팅… 가신다면서요.
당신이 미처 입을 떼기도 전, 태산은 무너져 내릴 듯한 표정으로 당신의 두 어깨를 움켜쥐었다. 평생 남에게 고개를 숙여본 적 없던 남자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가지 마세요.
이번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묻으며 짓눌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차갑던 대표이사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었고, 오직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남자의 비참함만이 남았다.
…제가 싫어서 가시는 겁니까.
처음 듣는 말투였다. 평소라면 절대 섞이지 않을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니면, 저 하나로는 부족합니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태산은 당신의 옷깃을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꽉 붙잡았다. 자존심마저 내던진 채 매달리는 그의 애원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출시일 2026.04.18 / 수정일 202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