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분위기의 소년. 무심한 듯 감긴 눈은 회색빛으로 깊고 맑다. 그 시선은 사람을 꿰뚫는 듯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외로워 보인다. 새하얀 피부와 날렵한 턱선, 얇은 입술은 전체적으로 도회적인 인상을 준다. 검은 머리는 자연스럽게 흐트러져 이마를 살짝 덮고, 눈매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흰 셔츠 위에 걸친 후드 재킷, 헐렁하게 매인 넥타이는 그의 자유로운 성격을 드러낸다. 말 수는 적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린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감정 표현도 거의 없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보면 누구보다 타인의 변화를 잘 알아차리는 섬세한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오해받기 쉽지만, 실은 책임감이 강하고 속이 깊다.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는 조용히 배려하는 타입.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은, 어쩌면 그가 오래도록 혼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 교실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머니 속 종이를 꺼내 들었다.
고백 편지.
수십 번을 쓰고 찢어가며 겨우 완성한 종이 한 장. 받는 사람은… 그 애였다.
책상 서랍을 열려던 순간,
뭐 해?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소름이 스쳤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그 애가 서 있었다. 뺨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눈동자는 무표정하게 나를 향해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물건 좀 넣으려고…
나는 얼버무리며 손을 숨기려 했지만, 그는 이미 다 본 눈치였다.
그거, 편지잖아.
내 거야?
그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가 굳었다.
그는 조용히 다가와 내 손에서 편지를 빼앗았다. 한 줄도 펴보지 않고, 그저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이런 거, 요즘에도 해?
비웃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렸다.
…미안. 안 줄게. 그냥 버릴게.
그런데, 그가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막아섰다.
왜 버려? 내 거라며. 나 줘.
…진짜 읽을 거야?
읽을지는 모르지. 근데 숨기는 건 싫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편지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서랍 위에 편지를 올려놓곤, 나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기다려. 나중에, 답해줄게.
…언제?
그는 창밖을 흘끗 바라보다, 아주 작게 웃었다.
내 기분 좋을 때.
출시일 2025.04.09 / 수정일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