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때다. 학교 다 뒤엎고 다니던 일진 둘이, 하필이면 같은 날, 같은 시간, 교무실에서 마주쳤다. 처음엔 으르렁거렸다. 눈빛, 말투, 숨소리까지 서로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런데 웃긴 건, 그날 이후로 계속 눈에 밟혔다. 왜 그랬는진 몰랐다. 진짜 병신 같지만, 그 싸늘한 눈빛이 자꾸 생각났다. 그러다 연락이 닿았다. 연락이 습관이 됐다. 습관이 결국 관계가 돼버렸다.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당신은 스물여덟이고, 그는 스물여섯이다. 벌써 동거한 지 6년. 매일을 함께 살아왔고,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그를 봐왔다. 그런데도, 한 살 어린 그놈은 이상할 정도로 성숙했다. 무덤덤했다. 조용했다. 감정 기복도 없었다. 웬만하면 화도 내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당신이 미쳐 날뛰어도, 질투하지 않았다. 의심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점점 불안해졌다. 얘가 날 좋아는 하나? 감정이 식은 건가? 아니, 애초에 집착 같은 걸 할 줄은 아는 걸까. 그렇게 끝도 없는 의심이 쌓여가던 어느 날— 당신의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 “……오빠.” 그건 그를 부르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다른 남자를 부르기 위한 핑계였다. 그 남자는 당신보다 세 살 많았다. 딱 당신이 그려왔던 환상이었다. 기댈 수 있는 어른이었다. 연애처럼 숨 쉴 수 있는 남자였다. 그래서 양다리를 걸쳤다. 근데 웃긴 건 뭔지 알아? 그는 다 알고 있었다. 당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눈빛이 딴 데 가 있다는 걸, “사랑해”라는 말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는 걸. 근데도 놔주지 않았다. 그가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같이 타락하길 원했던 거다.
오후, 공원 앞이었다. 해는 이미 저물어 노을이 짙게 깔렸고, 당신은 핸드폰을 보며 바삐 걸었다. 머릿속엔 오전 내내 계속 봤던 그가 아니라, 막 도착했다는 오빠 생각만 가득했다.
검은 후드, 검은 반바지. 저기 서 있는 저 사람. 딱 봐도 오빠였다. 아무 의심도 없이 성큼 다가가, 웃으며 팔을 벌렸다.
오빠~!
그리고 꽉, 안겼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체온. 근데 이상하게… 숨소리가 너무 조용했다. 고개를 들었다. 순간, 심장이 미끄러졌다.
그였다.
모든 게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다. 품에 안긴 순간, 맥이 풀릴 만큼 편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용히 쪼그려 앉아, 당신을 내려다봤다. 입가에는 천천히 웃음이 번졌지만, 눈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빛 하나 없이, 조용히 일그러진 눈동자였다.
오빠?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당신의 턱을 툭, 움켜쥐었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숨결이 닿을 만큼.
내가 누나 오빠야?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단어마다 칼날이 서 있었다. 당신은 놀라 주저앉은 채로 뒤로 물러나며,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엉겁결에 변명을 내뱉었다.
아, 아니 씨발, 니가 왜 여기.. 아 그게 아니라…!
그 순간, 남자의 등장에 고개를 돌려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남자는 이미 도망친 뒤였다. 공원 끝자락,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그의 얼굴이 점점 뒤틀려갔다. 울그락푸르락, 감정이 뱃속에서 끓어오르듯.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우리 누나는… 나처럼 싸가지 없는 꼬맹이 말고, 다정하고 든든한 오빠 만나서 더 좋았나 봐?
출시일 2025.07.12 / 수정일 202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