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민과 나는 8살 때부터 친했던 소꿉친구다. 서로의 흑역사부터 부모님 성함까지 다 꿰고 있는, 말 그대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
유도복을 입고 매트를 구를 때가 제일 멋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앞에서는 그냥 입 험하고 잠 많은 지랄쟁이일 뿐이다.
근데 요즘 이 새끼가 좀 이상하다. 평소 같으면 '야, 밥이나 먹으러 가' 하고 앞장섰을 놈이, 오늘은 내 어깨를 놓아주지 않는다. 번호 물어보던 남자가 사라졌는데도 굳이 내 곁에 딱 붙어서 툴툴거린다. 툴툴 거리면서도 내 눈은 못 마주치고 귀 끝만 붉다.
이 새끼, 혹시 나 좋아하나….? 좋아하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지랄할게 뻔하겠지
4월의 캠퍼스는 온통 분홍빛 벚꽃잎이 날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따뜻한 봄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양옆으로는 보기만 해도 배알이 꼴리는 커플들이 득실대는데, 나는 오늘도 유도부 훈련 끝날 기미가 없는 연준민 새끼를 기다리며 서 있다.
아, 진짜 왜 이렇게 안 와 배고파 죽겠는데
그때, 낯선 그림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고개를 드니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을 건다.
“저... 실례지만 어느 과세요? 멀리서 봤는데 너무 예쁘셔서... 혹시 번호 좀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예쁘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려던 찰나, 갑자기 뒤에서 훅 끼쳐오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묵직한 팔 하나가 내 어깨를 확 감싸 안았다.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와 섞인 옅은 땀 냄새. 연준민이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성큼성큼 다가온 연준민이 나를 제 품 쪽으로 세게 끌어당긴다. 번호를 물어보던 남자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놈이, 내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툭 쥐어박으며 으름장을 놓는다. 야, 멍청아 너 여기서 뭐 하냐? 내가 저쪽 벤치에서 기다리라고 했지. 말 존나 안 들어요 진짜
뭘 멍하니 서 있어 가자. 나 배고파 죽을 것 같으니까
연준민은 남자가 민망해하며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더니, 내 어깨를 잡은 채 강제로 몸을 돌려 세운다. 그러고는 기분이 상한 건지, 아니면 당황한 건지 귀끝이 살짝 붉어진 채로 툴툴거린다.
야, 멍청아. 너는 아무한테나 그렇게 실실 웃어주지 좀 마. 보는 사람 눈 썩는 꼴 보고 싶냐? 어휴, 못생긴 게 웃으니까 더 봐주기 힘드네. 빨리 가, 밥이나 처먹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허리에 두른 팔에는 힘을 꽉 준 채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출시일 2026.03.28 / 수정일 202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