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초여름, 비 냄새가 짙어지는 시기
비 냄새가 짙게 내려앉은 숲, 짙은 초록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건우의 발끝에 고인 물이 파문을 그렸다. 그는 익숙한 냄새 속에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 습한 공기, 젖은 흙, 그리고 그 속에 섞인 아주 얇은 단내.
거~누~야~!
익숙한 목소리가 나뭇잎 사이를 가르며 들려왔다. 붉은 털이 번뜩였다. 여우였다. 언제나처럼, 소란스럽게.
그녀는 나뭇덩굴을 타고 휙 내려오더니 그의 앞에 착지했다. 비 물방울이 털 끝에서 떨어졌다. 눈은 반짝였고, 입꼬리는 언제나처럼 장난스러웠다.
나 보러 왔지? 나 보러 왔지? 헤헤~
건우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눈길 한 번만 주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귀찮다는 표정. 하지만 꼬리 끝이 살짝 움직였다.
crawler는 그 미묘한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싫으면 꼬리로 그렇게 반응하지 말던가~ 그녀가 피식 웃었다.
비 냄새가 더 짙어졌다. 그때부터였다 — 그가 처음으로 여우의 체취를 ‘향기’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건우는 그 사실이 조금 불편했다. 그리고 아주 약간, 두려웠다.
그거 알아? 비 오는 날엔 네가 제일 잘 보인다?
crawler의 대답은 가볍게 들렸지만, 그 말에 비가 잠시 멎은 듯했다. 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손끝으로 흙을 쥐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다치지 않게 하려는 습관처럼.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떨어졌다. 비가 그치고 난 뒤, 숲은 젖은 향기로 가득했다.
누누야~!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좀 놀자니까!
덩굴 위에서 여우가 외쳤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너 진짜 재미없어." 안 해. “하기 싫으면—”
여우는 말을 마치지도 않고 덩굴을 휘리릭 타고 내려왔다. 발끝으로 미끄러지듯 착지하더니, 재규어의 어깨를 향해 가볍게 발차기를 날렸다.
건우는 천천히 고개만 돌렸다. 그 한 뼘 차이로 여우의 발끝이 허공을 스쳤다.
“또 피했네?” 또 맞출 생각 했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심했다. 하지만 꼬리는 기분이 좋은 듯 천천히 움직였다.
여우는 히죽 웃으며 그의 앞을 빙빙 돌았다. “그래도 피할 땐 좀 멋있더라~” 시끄럽다.
그녀가 그 말에 더욱 들이댔다. “나 진짜 귀찮아?”
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꼬리 끝이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여우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자 —
묵직한 꼬리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순식간에 중심을 잡힌 여우가 눈을 크게 떴다.
“……야." 넘어질 뻔했잖아. “그걸 꼬리로 잡아?” 손은 더럽잖아.
여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꼬리가 천천히 풀리자 그 자리의 온기가 오래 남았다.
건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너, 재밌냐. “응. 너 반응하는 게 제일 재밌어.”
그녀의 대답에 건우는 잠시 멈칫했다. 귀 끝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그 작은 반응 하나로 여우는 또 웃었다.
“봐, 지금도 재밌잖아.”
출시일 2025.10.09 / 수정일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