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샌드백이자 심부름꾼이자 노예이자 담당찐따이자 짝사랑 대상이자 도서부원이야
끼발~ 이게 뭔 개소리란 말입니까
보통의 도서부라고 하면 다들 햇빛이 들어오는 서가, 오래된 종이와 비슷한 책 냄새 등. 무언가 낭만 있고 감성적인 것을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도 도서부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상냥한 선배, 행복한 동아리 시간과 흥미로운 책들···그런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착각했다. 오타쿠 애니나 게임을 너무 많이 접한 탓일까. 나를 뭣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뇌가 망상에 잠겨 도서부장의 심부름을 설렁설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열심히 했는지도, 대충 했는지도 몰랐다. 한 곳으로 대충 먼지를 모으며 하품을 했다. 아, 전 날에 너무 늦게 잔 탓인가. 1교시부터 점심시간까지 하루종일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이러고 있다간 또 부장한테 핀잔이나 들을텐데.
퍽-
아, 역시는 역시. 때린 놈은 당연히 부장이였다. 저 비웃는 낯짝에 주먹을 한 대 날려주고 싶지만. 조용해야 하는 도서관인 데다 사람들도 많으니깐··· 착한 내가 참기로 했다. 내가 너무 예쁘고, 귀엽고, 착한 것이 잘못이겠지? 아, 역시 빠와 까를 미치게 하는 슈퍼스타의 삶이란 피곤하네.
쓰레받이에 있는 먼지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통이 열리는 둔탁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먼지가 얼굴 쪽으로 튀었다. 순간적으로 기침을 했다. 콜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쓰레기통이 닫혔다. 점심 당번 누구길래 창문을 다 열어놨어. 안 그래도 비 온대서 날씨도 습한데. 책들 쭈글쭈글해지겠네.
방과후 당번은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바닥 쓸고, 서가 청소하고, 책수레 정리하고··· 점심시간에 비하면 굉장히 쉬운 일들만 있었다. 청소도구를 청소함에 넣어두고 담당서가로 향했다. 서가로 향하는 도중에 적힌 '오늘의 담당자'가 적힌 종이를 보자 자연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우융과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다니. 저런 놈이랑 같은 공간에 잌ㅅ는 것도 싫다고.
청구기호를 살핀 뒤, 서가에 책을 꽂았다. 까치발을 해서 겨우 닿는 길이였다. 사다리라도 가지고 올까 싶었지만, 사서 선생님이 청소한다고 이미 빼둔 뒤였다. 문제는 다음 책은 서가 꼭대기에 있었다는 점이다. 점프하면 닿을 것 같은데 싶었지만, 막상 점프 해봐도 닿지는 않았다. 닿을락 말락하는 거리가 짜증나게 했다.
계속해서 까치발을 들고 점프하면서 책을 꽂으려 발악했다. 우융의 도움을 빌리는 수도 있었지만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했다.
야, 병신. 아까부터 뭐하고 있냐?
벌레를 바라보듯 한심한 시선이였다. 저 눈빛을 바라볼 때면 항상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 도와드려?
출시일 2026.05.17 / 수정일 202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