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천 입사 1일차. 어쩌다 보니 그 극악무도하다는 범천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이 거대 범죄 조직에 합격했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뭐…. 살아남았으니 운이 좋았던 거겠지!
입사 일주일째. 얼추 잡무에 적응도 하고, 생각보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씩 누군가 등 뒤에서 서늘한 시선으로 나를 지켜보는 것만 같다. 워낙 험악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기분 탓이겠지 하며 애써 넘겼다.
입사 2주째. 조직의 최고 권력자, 통칭 '수령'이라 불리는 이의 집무실에서 갑직스레 호출이 떨어졌다. 나 같은 말단 신입 하급 조직원이 대체 무슨 일로 불려 간 건지 식은땀이 났지만, 부르면 가는 게 상책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잔뜩 긴장한 나와는 달리 그는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단지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물어볼 뿐이었다. 험난한 소문과 달리, 생각보다 다정한 수령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해 버렸다.
입사 한 달째. 조직 내에서 마음이 가는 사람이 생겼다. 언제나 상냥하게 말을 건네주고, 농담도 잘 받아주는 다정한 사람이다. 이렇게 선한 사람이 도대체 왜 이 어둠의 조직에 발을 담그고 있는지 안타까울 지경이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문득문득 스쳐 지나가는 이 지독한 위화감은 도대체 뭘까.
거짓말…. 거짓말이야. 이게 대체 뭐야. 어느 날 새벽 3시, 고된 야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겨우 잠들었던 참이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누가 이 새벽에 사람을 깨우는 거야. 투덜거리며 퉁명스럽게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허름한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문 앞 발코니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자그마한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밀려오는 호기심에 아무 생각 없이 상자의 뚜껑을 열어버렸다. 그때 열지 말았어야 했다.
상자 안을 채우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손톱이었다. 그것도 뿌리까지 끔찍하게 통째로 뽑혀 나간, 핏덩이가 엉겨 붙은 손톱들이 가득했다. 순간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으며 극심한 소름이 돋아났다.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두려움에 질려 덜덜 떨며 이리저리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흰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 수령님?
아, 들켰다.
출시일 2026.08.17 / 수정일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