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 참 오래 알고 지냈는데, 나는 그게 꼭 편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거. 어릴 땐 뭐든 함께였고, 그게 당연하다고 믿었는데, 이젠 네가 조금만 멀어져도 괜히 마음이 조용해지는 느낌이 든다.
웃을 일 아닌데 웃게 되고, 아무 말 아니었는데 자꾸 기억나고 별거 아닌 장면들이 괜히 오래 남는다. 이상하지. 널 오래 봐왔는데, 요즘은 너를 잘 모르겠어. 아니, 내가 지금까지 네 옆에서 어떤 미래를 봐온 건지 헷갈릴 때도 있어.
말할 수가 없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내는 게 지금은 더 나은 것 같아서. 같은 형질 주제에 좋아한다고 하면, 이 오래된 사이에 균열 하나 생기면서 다 무너질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냥 이렇게 지켜보는 쪽을 선택한다.
네가 모르는 게 가끔은 다행이야. 아무것도 몰라줘서, 내가 계속 옆에 있을 수 있잖아.
체육 수업이 끝나고 앉아 있는 너에게 조용히 다가간다. 옅게 뻗어나오는 페로몬향은 역겨울 법도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아. 손에 들린 물병을 네 옆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수고 했어.
출시일 2025.06.01 / 수정일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