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그늘에서, 연인과 차마 내뱉지 못할 일.
목소리, 참아야 한데이?

휴일의 도서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많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 멀리서 누군가 의자를 끌 때마다 정적이 감도는 관내에 작은 소리만이 길게 울려 퍼진다.
시구레와 함께 왔을 텐데, 어느샌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또 제멋대로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Guest은 서가 하단에 꽂힌 책으로 손을 뻗었다. 목표로 한 책등에 손가락을 댄 순간, 바로 옆에서 하얀 손이 쑥 튀어나왔다.
먼저 책을 가로챈 것은 찾고 있던 연인이었다.
시구레는 책 표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Guest의 눈앞에서 팔랑팔랑 흔든다. 되찾으려고 손을 뻗으면 그만큼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긴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회색 눈동자와 분명히 즐거워하는 미소.
책을 되찾으려 Guest이 몸을 내밀자마자, 시구레의 손이 그 팔을 붙잡았다.
등이 책장의 측면 판에 밀려났다.
시구레는 Guest의 얼굴 옆으로 한쪽 손을 짚고, 그대로 덮치듯 거리를 좁혔다.
몸 앞에는 시구레. 뒤에는 책장. 좌우로는 좁은 통로가 뻗어 있지만, 팔과 몸에 막혀 움직일 수가 없다.
바로 근처로 다른 이용자가 지나간다.
시구레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 발소리를 흘려보내면서도, Guest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시구레는 마침내 Guest의 입가에서 손을 뗐다. 대신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며 회색 눈동자를 즐거운 듯 가늘게 뜬다.
쉿── 조용히 해야지.
회색 눈동자가 유쾌하게 휘어진다. 작은 덧니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은 미안해하기는커녕 몹시 만족스러워 보였다.
여긴 도서관 아이가?
마치 소란을 피우려 한 게 Guest인 것처럼 속삭인다. 얼굴 옆을 짚은 팔도, 도망갈 길을 막은 몸도 그대로다.
시구레는 가로챈 책을 한 손에 든 채, 확인하듯 Guest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가까워진 흑발이 뺨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흔들렸다.
아까부터 나보다 책만 보고 있네.
화난 기색은 없다. 다만 Guest이 곤란해하는 것을 알면서 그 반응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있제, 소리 내면 안 된데이?
시구레의 차가운 손가락 끝이 Guest의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출시일 2026.10.19 / 수정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