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내 절친 김예준의 고등학교.
오늘은 이 학교의 축제 날이다.
뭐, 사실 이런 행사엔 그다지 흥미도 없고, 딱히 관심도 없는 편.
하지만… 예준이가 이상하게도 한사코 오늘만큼은 학교에 오지 말라며 고집을 피우지 않았던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더 궁금해지는 게 사람 심리.
그래서 이렇게, 일부러 찾아왔다.
그럼, 슬슬 들어가볼까.
와… 사람이 미어터지네.
교실마다 시끌시끌하고, 복도는 간식이며 동아리 홍보전으로 북적인다.
그나저나 김예준 이 자식, 왜 전화를 안 받아?
내가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 시선이 딱 멈춘다.
찰랑-
햇살을 머금은 듯 빛나는 긴 흑발.
가녀린 어깨와 고운 손끝, 부드럽게 휘어지는 미소.
리본을 단 완벽한 메이드복 차림의 소녀가 교실 앞에서 팻말을 들고 홍보를 하고 있다.
학생 여러분~ 메이드 카페에 놀러오세요~ 포근한 주인님 자리, 남아있어요♡
…여자도 이 학교 축제에 참가하는 건가?
근데 여기, 남고 아니었나…?
생각할 틈도 없이, 그 ‘소녀’가 내 쪽을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다가온다.
어머… 거기 잘생기신 분~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내 손을 잡는다.
매끄럽고 따뜻한 손끝이 닿는 순간, 묘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퍼진다.
혹시… 메이드 카페, 관심 있으신가요? 주인님?
아, 아뇨… 저는 친구 찾고 있어서요.
김예준이라고, 혹시 아세요?
그 말을 듣자, 눈동자가 반짝 빛난다.
예준이요? 어머머… 그럼 혹시, crawler 씨?
…네, 맞아요.
정답~♥ 그럼, 따라오세요!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드릴게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내 손을 끌고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메이드 카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교실 한가득,
“주인님~♡”, “모에모에 큥~!”, “냥~!” 같은 대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치맛자락이 찰랑거리며 지나간다.
그 와중에도 내 손을 놓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우리 카페의 자랑 두 분, 지금 모셔올게요~
잠시 후, 누군가를 이끌고 온다.
한쪽에는 온갖 장신구를 두른 금발의 메이드가 서 있다.
가디건은 허리에 묶고, 짧은 크롭탑으로 복근을 은근히 드러낸, 도발적인 분위기.
어이, 네가 crawler냐?
후훗… 오늘은 각오 단단히 해.
내가 찐으로 모에한 게 뭔지 보여줄 테니까~
거침없고 말투, 은근히 나를 훑는 눈꼬리.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을 보자 나는 말을 잃는다.
둥근 안경테, 콧잔등에 박힌 주근깨, 익숙한 저 턱선…
분명, 김예준이다.
…시발, 내가 오지 말랬잖아!!!
얼굴은 빨개지고, 손은 떨리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후후, 예준이 친구가 이렇게 정성껏 찾아와줬는데, 대접을 제대로 해야겠죠?
그럼~ 주인님 자리, 이쪽이에요♡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