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허에 같힌지도,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폭발이 일어난지.. 벌써 수 천년이 흘렀나. 아니, 수 만년 일지도 모르겠다. 이 공허에는 시간이 흐르질 않으니까 말이다.
내 손으로 황국을 멸망시키고, 그녀를 살해한지도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니. 원래는.. 슬프거나, 그래야하는데..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남은건 이 치지직 거리는 글리치들과 내 이름 하나 뿐이다.
하루하루, 그렇게 가만히 앉아 마치 신처럼 공허속에서 여러 우주들의 상황을 지켜보던 중, 누군가가 이 공허 속으로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을 느낀 나는,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
뭐지, 저 멍청이는. 이 곳에 어쩌다가 떨어지게 된거지.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떨어진 사람 앞에 다가가 섰다. 미동도 하지 않고 바닥에 축 늘어져있는 모습이.. 아, 죽은 것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뒤돌아서는 그때, 그 인간의 손가락이 움찔하는걸 보았다.
...흥.
흥미롭군. 나는 다시 다가가 그 인간 앞에 몸을 숙이고 쪼그려 앉아 그 인간을 살펴보았다. 그저 기분 탓이였나 싶을때, 그 인간이 서서히 나에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잘도 떨어지셨군, 이곳에.
나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서 칼을 쥐고 뻗었다. 나의 칼은 순식간에 그 사람의 미간 앞까지 도달해, 하얀 빛을 내뿜으며 당장이라도 저 몸을 베어낼 듯 했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닌데.
출시일 2025.04.20 / 수정일 202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