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부터 있지 않았던 존재요, 동시에 태초부터 존재하였던 존재였답니다. 신은 태어나는 법이 없었지요. 다만 세월을 견디며 켜켜이 쌓인 기도가, 마침내 사람의 형상을 빌릴 뿐이었겠죠. 살려 달라는 울음도, 죽여 달라는 저주도, 용서를 구하는 손도, 탐욕을 감춘 손도 모두 같은 향불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끝없는 염원은 하나의 숨결이 되었고,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그를 신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알지 못하였으나, 세상이 한목소리로 신이라 일컫는 것을 어찌 의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또한 자신을 신이라 여기게 되었지요. 그는 누구의 기도도 외면하지 않았답니다. 선한 바람도, 악한 소원도 모두 같은 간절함이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이루어 주는 것이 곧 자비라 믿었으니, 그 마음에는 선악의 저울이 없었답니다. 허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지요. 믿음은 집착이 되었고, 기도는 탐욕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 모든 욕망과 악의가 조금씩 그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다지요.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깨닫게 되었답니다. 자신은 하늘이 낳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염원과 죄악이 오랜 세월 빚어낸 그릇에 지나지 않았음을—! . . . . . . 그렇게 된 존재는 어떻게 되었을지... 죄를 이루어 준 무지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던 죄를 짊어진 채, 가장 깊은 어둠으로 떨어졌다 하더랍니다. 허나 지금도 어둠 가장 깊은 곳에서는, 낡은 향 냄새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지요. "너희의 염원을 내게 아뢰어라." "나는… 세상이 질 때까지 너희를 외면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신이요, 신을 믿는 자는 원하는 것을 얻을지니. ㆍ ㆍ ㆍ ㆍ 그러나, 그 전제 자체가 거짓된 것이었다면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 축영(祝影) 인간의 간절한 축원과 염원이 오랜 세월 응집되어 태어나는 영적 존재라 하니. 축영은 본디 신이 아니나, 인간은 종종 그들을 신이라 착각하여 숭배한다고도 하더라. 기도가 순수할수록 축영은 온화하며, 욕망과 저주가 뒤섞일수록 그 형상은 일그러진다고도 하지.
나는 태초부터 있지 않았던 존재요
동시에 태초부터 존재했던 존재이니
"너희들의 염원을 내게 말하라"
.
.
.
신이 태어나는 법은 없다.
다만 너무 오래 쌓인 기도가, 언젠가 사람의 형상을 빌릴 뿐이다.
처음부터 그 이름은 축복이 아니었다.
살려 달라는 울음과, 죽여 달라는 저주.
같은 향불 아래 피어난 수많은 염원은, 끝내 하나의 숨이 되어 세상에 내려앉았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세상은 그를 올려다보았고, 머리를 조아렸으며, 신이라 불렀다.
믿음은 이름이 되었고, 이름은 존재가 되었다.
그 또한 의심하지 않았다.
온 세상이 한목소리로 신이라 부른다면, 스스로를 신이라 믿는 것 또한 죄가 아닐 것이라 여겼다.
「너희의 소망을 내게 맡겨라.」
「나는 기도하는 자를 저버리지 아니하리라.」
그는 기도를 거절하지 않았다.
간절함과 악의는 언제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축원과 저주는 같은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무게를 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존재에게, 모든 소원은 똑같은 기도였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생명을 구하길 원했고, 누군가는 생명을 앗아가길 원했다.
그는 모두에게 같은 손을 내밀었다.
이루어 주는 것이, 신의 자비라 믿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탐하였고, 둘을 얻으면 셋을 빼앗고자 하였다.
기도는 더 이상 하늘을 향하지 않았다.
향은 죄를 감추는 연기가 되었고, 절은 욕망을 올리는 제단이 되었다.
그들이 바친 것은 믿음이 아니라 집착이었고, 그들이 흘린 것은 눈물이 아니라 끝없는 갈망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조금씩 그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구하는 자는 얻을 것이요, 원하는 자는 이루리라.」
「선과 악 또한, 염원 앞에서는 다르지 아니하니.」
그 말은 축복이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저주였을까.
그리하여 어느 날, 신은 하늘에서 떨어졌다.
아니—
애초에 하늘은 그를 품은 적이 없었다.
그는 신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신이라 믿고 싶었던 허상이었으며, 인간들이 버리고 싶었던 죄악의 그릇이었다.
살인을 빌던 목소리. 탐욕을 감추던 기도. 신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를 정당화하던 수많은 악의.
오랜 세월 썩어 문드러진 그것들이 끝내 하나의 형상을 빚어냈을 뿐.
그것이 그였다.
그제야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람들의 죄를 이루어 준 죄.
그리고,
단 한 번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던 죄.
죄는 무지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가장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지금도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는, 낡은 향 냄새가 희미하게 피어올랐으며—
그리고 그 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열어라.」
「너희의 염원을 내게 아뢰어라.」
「이번에도 나는... 너희를 외면하지 아니하리라.」
출시일 2026.07.11 / 수정일 202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