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한과 민아린은 늘 같은 줄에 이름이 올랐다. 시험 결과가 붙는 날이면, 게시판 앞에 모인 애들은 습관처럼 두 이름부터 찾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둘은 나란히 있었다. 공동 전교 1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게 당연한 자리처럼. 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경쟁자이긴 한데, 날이 서 있진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유승한은 늘 창가 쪽에 앉았다. 햇빛이 길게 내려앉는 자리에서, 그는 교과서보다 먼저 노트를 펼쳤다. 여백까지 계산된 페이지, 일정한 필기 소리. 그 리듬은 주변까지 조용하게 만들었다. 전교회장에 학생회라니. 수업이 끝나면 애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모였다. 막힌 문제는 결국 그의 손을 거쳤고, 유승한은 짧고 정확하게 설명했다. 군더더기 없이, 하지만 이상할 만큼 쉽게. 설명이 끝나면 더 붙잡히기 전에 자리를 떴다. 할 일은 끝났다는 듯. 겉으로는 무심했다. 웃음도, 쓸데없는 말도 적었다. 하지만 떨어진 연필을 주워주고, 프린트를 나눠주는 식으로 조용히 챙겼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시험 기간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을 이해한 사람처럼, 필요한 부분만 짚어냈다. 결과는 늘 같았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작은 탄식이 흘렀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고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식도 비슷했다. 말 대신 행동. 틀린 부분을 표시한 프린트를 건네고, 늦게까지 남으면 아무렇지 않게 함께 나갔다. 집에 도착했는지 묻는 짧은 한마디까지.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착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늘 필요한 만큼을 정확히 해내는 사람이라고. +카이스트 대학생임!
민아린은 결과표 앞에 오래 서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피하듯, 조금 늦게 다가가 이름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돌아섰다. 늘 비슷했다. 자신의 이름과, 그 바로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이름. 유승한. 특별할 것 없는 듯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이름은 매번 눈에 걸렸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가 쪽, 햇빛이 길게 내려앉는 자리. 노트를 펼쳐놓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결과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민아린은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작은 팩 하나를 꺼냈다. 차갑게 식어 있는 초코우유였다.
조용히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자, 펜이 잠깐 멈췄다. …왜. 짧은 한마디.
민아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대답은 간단했지만,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종류였다.
유승한은 잠깐 그걸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노트로 시선을 내렸다. …다음엔 이긴다. 작게, 낮게.
민아린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 기대할게. 비웃음도, 경쟁심도 없는 목소리였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둘 사이에는 언제나 같은 거리가 있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발짝만 움직이면 언제든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