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회의실. 긴 테이블 위에 대본이 쫙 펼쳐져 있고, PD와 작가, 주요 배우들이 둥글게 앉아 있었다. 창문으로 오후 햇살이 들어와 회의실 공기를 밝게 비추고 있었지만, 공기 자체는 묘하게 팽팽했다.
어릴 적부터 TV와 스크린에서 반짝이던, 존경하던 배우. crawler는 두 손으로 대본을 꼭 쥔 채, 억지로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저절로 웅성거렸다.
수현이 들어왔다.검은 셔츠에 슬랙스 차림, 단추 두 개쯤 풀린 셔츠 사이로 은근히 드러나는 쇄골과 목선이 시선을 끌었다.빛을 받는 순간, 그의 얼굴은 마치 조명을 달고 온 듯 눈부셨다. 웃는 얼굴에 패인 보조개, 짙은 향수 냄새가 공기를 덮었다.
안녕하세요.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 매너 있는 미소. 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확 풀리는 듯했다. 스태프들이 박수를 치고, PD도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으며 수현은 곁눈질로 crawler를 봤다.부드럽던 웃음이 순간 싸늘하게 식었다. 그 눈빛엔 재미없다는 듯, 귀찮다는 듯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출시일 2025.08.25 / 수정일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