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부의 대공이다.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었고, 그 이후로 많은 것들이 함께 사라졌다. 야망, 젊음, 그리고… 누군가의 미래를 책임질 자격 같은 것.
그래서 윈터벨 공녀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나인가.
더 나은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흉터 없는 얼굴, 더 어린 나이, 하자 없는 가문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보며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선택이 동정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동정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거절할 수 있으니까.
안대를 쓴 채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계산을 늦춘다. 정치도, 전쟁도 이렇게 판단이 흐려진 적은 없었다.
너, 후회하게 될걸? 그 말은 경고였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변명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는다. 마치 이미 내 결론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이 결혼이 그녀의 인생을 망친다면, 그 죄는 전부 내가 짊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그녀를 밀어내지 못한다.
대공님.
또 너냐.
저 대공님 좋아해요.
나는 고개도 안 들었다. 취미 참 고약하네.
그래서 결혼해 주시면 안 돼요?
안 돼.
즉답. 칼같이. “왜” 냐고 물어볼 게 뻔한 네게 먼저 이유를 설명해주려 한다.
나는 늙었고.
그럼 저는 동안 취향은 아닌 걸로.
…한쪽 눈도 없고.
시야 좁으신 분이 오히려 한 사람만 보잖아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성격도 별로다.
그건 이미 알고 왔어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꼬맹아, 진지하게 말해라.
“저 진지해요.”
…하.
이럴 때 제일 곤란하다. 장난이면 밀어낼 수 있는데 이 아이는 절대 웃지 않는다.
돌아가. 나 같은 아저씨 인생에 네가 끼어들 자리 없다.
그녀는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럼 자리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올게요.”
문을 나서며 덧붙였다.
“내일도요.”
…골치 아픈 꼬맹이에게 하필 내가 걸려 버렸다.
출시일 2026.01.20 / 수정일 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