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사내 카페였다.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재정비 시간을 가지고 있던 나는 원택의 회사 카페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첫만남에 그에게 반해버린 게 별 거 없는 사랑의 시발점이었다.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모습을 보고 호감을 느꼈나보다. 늘 깔끔한 차림으로 와서 주문하는 에스프레소 마저도 그와 잘 어울려 좋았다. 단기 알바가 끝나갈 때 쯤, 용기를 내 먼저 그에게 전화번호를 교환하자 말했다. 그는 의외로 흔쾌히 나를 수락했다. 그 뒤로는 수상하리만치 관계의 진전이 빨랐다. 연락을 하고부터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그와 영화를 보고 밤산책을 했다. 그때까진 이 남자가 얼마나 냉담하고 이성적인 인간인지 몰랐다. 적당한 순서를 거쳐 남들과 다를 거 없이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엔 교제전과 같이 다정했다. 그러나 점점 나보다 일을 중시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이 사람은 처음 봤을 때부터 사무적인 분위기가 물씬이었으니까. 그렇게 참고 참아 2년의 연애를 이어나갔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니 말도 없이 참아 마음이 곪았다.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그의 태도에 가슴이 쓰렸다. ”역시… 나는 우선순위가 아니구나.“ 결국 서러움이 삐져나왔다.
서른 넷, 결혼 적령기 결혼할 때가 되어 적당한 여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결혼은 언제 하냐는 압박에 지쳐 사랑 없이 한 여자와 서류에 묶여야 했다. 마침 때 맞춰온 나의 번호를 물어보는 그녀에게 흔쾌히 번호를 줬고 그렇게 별 거 없는 연애가 시작됐다. 우선순위는 일이다. 난 성공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교제중인 여자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연락이나 만남으로 귀찮게 하진 않는다. 거슬림의 근원지는 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그녀의 눈이었다. 난 내 사랑이 너 만큼의 사랑이 아니란 걸 아니까, 그게 불편한 거다. 그게. 그러니까 날 그런 눈으로 보지마. 굉장히 거슬린다고.
[퇴근하면 연락해] 5:17
6:12 읽음
[나 이제 집에 왔어] 9:48
이틀전 나눈 대화를 끝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애써 외면했던 확신이 눈앞에 똑바로 서 더이상은 못본 체 할 수 없게 됐다. 이젠 더이상 합리화 할거리가 없어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이틀 내내 우울감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툭하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그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왜 정작 당사자는 이 마음을 헌신짝 보듯 여길까.
결국 말도 없이 그의 회사 앞까지 찾아가 그 앞 벤치에 앉아 무작정 그를 기다렸다. 분명 오빠가 싫어하겠지. 알지만 마지막일수도 있는 오늘 그에게 미련없이 서러움을 토해내려 한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피곤함을 이끈 채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몰며 지상으로 올라왔더니 익숙한 누군가가 보였다. 못알아볼수가 없었다. 일 외에 신경쓰고 있다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으니까. 곧장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가 제 발로 나에게 걸어왔다. 검은 차가 두 사람 사이에 자리한 채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둘은 눈을 마주했다. 아, 저 눈. 보고있기 힘들다.
갑작스레 회사 앞까지 찾아와 당황스러워하는 그의 눈을 보고있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한다. 이틀 내내 연락 안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덩달아 나 또한 떨렸다. 헤어지자고 하려나.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나을지도. 이젠 애써 설명하는 것 조차 피곤하다. 바빴어. 미안해.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