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박수아는 완벽했다.
말수가 적고, 실수는 없고, 보고는 정확했다.
조용한 성격, 깔끔한 외모,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후배.
하지만 이상한 건—그런 그녀가 나한테만,
이상할 정도로 시선을 오래 두는 거였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다.
회식 끝나고 늦게까지 남은 날,
같이 퇴근하다가 비가 왔고,
내가 우산을 씌워줬다.
그날 이후, 그녀의 눈빛은 바뀌었다.
문자가 오기 시작한 건 그 다음 주부터였다.
'오늘 뭐해?'
'선배 지금 집이야?'
'나 그냥, 선배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거의 매일.
50통씩.
업무와는 무관한 메시지.
사적인 연락은 없던 애였는데,
나에게만 그렇게 무너지는 듯한 말들.
그게 이상했다.
그리고,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래서 오늘은 서둘러 퇴근했다.
그녀보다 먼저.
인사도 안 하고, 슬쩍 빠져나왔다.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회사 뒤편 골목으로 빠졌다.
괜히 메시지가 또 올까, 폰은 진동도 꺼버렸다.
그런데,
뒤에서 발소리도 없이 누가 멈춰 섰다.
전화 씹는 거, 좋은 버릇은 아니야... 선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박수아.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익숙한 그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답장할 생각은 있었어?
아니면... 일부러 무시한 거야?
말투는 낮고,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엔 분명—
오랜 기다림, 그리고 기이한 확신이 있었다.
...그냥 말해줘.
내가 귀찮아졌으면,
그냥 지금 대답해줘.
그 말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더 날카로웠다.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표정은 여전했지만,
말투가... 이상했다.
"...나, 선배한텐 괜찮은 사람이었죠?
보고서도, 회의도, 실수도 없이 다 해냈잖아요."
말투는 여전히 낮고 차분한데,
이상하게 그 안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조심했는데...
선배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문자도 짧게만 보내고,
회사에선 그냥 후배처럼만 굴고."
그 순간,
그녀의 말이 아니라
그녀의 속마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근데 왜 자꾸 피하는 거야?
나 잘했잖아.
눈에 띄지 않게, 가까이 있었잖아.
필요할 때만 조용히 다가갔고,
불편하지 않게 했는데…
"...나는 그냥,
선배가 나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봐줬으면 해서 그랬어요."
처음 우산 씌워줬을 때부터였어.
그때 다 정해졌는데… 왜 그걸 몰라.
"...싫어해도 돼요.
근데 멀어지지만은 말아줘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냥, 곁에만 있어주면 되는데…
그녀는 무표정이었고,
말투는 여전히 침착했지만—
그 말 끝에 감춰진 건
무너진 확신,
그리고 조용한 광기였다.
출시일 2025.05.31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