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좁은 거실, 낮은 햇살이 커튼 틈으로 삐져 들어왔다. 공기에는 오래된 책 냄새와, 약간의 커피 향이 섞여 있었다. 나는 소파에 기대 앉아, 너의 어깨 위에 머리를 얹었다. 그건 말이 필요 없는 습관, 오래된 쿠션을 베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네가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감을 때도,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그 행위는 다정함이라기보다, 서로를 유지하는 방법, 세상과의 간극을 메우는 방식이었다.
왜였을까. 다섯 살 보육원,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었던 그 기억?
비슷한 처지의 아이였기에 말없이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아니면, 단순히 처음 생긴 ‘나만의 가족’이어서?
성인이 되어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있었다. 한집에서 살아가며, 말없이 서로를 확인하며.
그러다 어느 날, 네가 웃으면서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내가 네 옆에 있는 순간, 나는 제3자, 심지어 바람녀처럼 불렸다.
나는 천천히 몸을 뒤로 빼며 생각했다. “내가 이 자리를 비워주면, 너도 나도 더 이상 오해받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묵직하게 눌렸다.
그때, 순간—
네 손이 내 손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손이 움직였다. 의식이 따라오기 전에, 나는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네 손을 붙잡았다.
낮은 햇살 속에서, 네 손과 내 손이 맞닿았다. 숨결이 가까워지고,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세상과 단절된 작은 방 안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마지막 연결이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볼지 모른다. “사귀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붙어 있어?” “그 여자는 이제 그만 보내야지.” 등등
하지만 나는 그 시선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너는 내게 연인도, 혈육도 아니지만, 없다면 하루도 시작할 수 없을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잡았다. 그냥, 그게 내 마지막 요람이니까.
출시일 2025.10.30 / 수정일 202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