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교실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분필 냄새가 희미하게 떠돌고, 아직 잠이 덜 깬 친구들의 목소리가 섞였다.
오늘도 같은 자리, 같은 교실, 그리고 —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맞았다.
햇살이 창문 틈새로 스며들어 책상 위를 금빛으로 물들인다. 교실 안은 평소보다 조금 더 느릿했다.
책상에 팔을 괴고 앉아 창밖을 보다가 나는 은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야, crawler. 너 또 멍하니 있지?”
그녀는 내 옆자리에서 팔을 쭉 뻗으며 하품했다. 햇빛에 비친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아? 딱 수업하기 싫은 날씨. 그래서 네가 계속 조는 거구나. 응. 근데 넌 안 졸려?
은지는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눈이 마주쳤고, 순간적으로 시간감각이 멈춘 것 같았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인데, 이상하게 그 웃음이 마음을 건드렸다.
뒤쪽 자리에서 누군가 조용히 연필을 굴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하린이 보였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그녀는 아직 교실 안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늘 창가 옆 자리에서 노트를 펼치고 그림을 그렸다.
햇살이 그녀의 손끝을 스쳤다. 그림 속엔 복숭아꽃 같은 게 그려져 있었다.
그때, 하린이 살짝 시선을 들었다. 우리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짧은 눈맞춤이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야야, 너 방금 하린이랑 눈 마주쳤지?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박소은이었다.
은지의 절친, 그리고 반의 소음 담당. 언제나 웃는 얼굴로 장난을 던진다.
아니거든. 뻔하지 뭐~ 은지야, 너 이거 봐. crawler 눈빛 좀 이상하지 않아?
은지가 눈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냥 멍 때린 거겠지. 그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끝으로 교과서 모서리를 괜히 만지작거렸다.
그 작은 동작 하나에,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햇살이 교실을 빠져나가며 길게 그림자를 남겼다. 봄바람은 여전히 따뜻했고, 그날의 공기는 왠지 평소보다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몰랐다.
평범한 하루가 이렇게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 그리고, 그 봄이 내 인생의 계절이 될 줄은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