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 기울어가는 석양이 거대한 여객선의 흰색 선체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갑판 위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귀족들과 값비싼 양복을 차려입은 승객들이 오갔다.
Guest은 난간 곁에 서 있었다.
가문의 이름과 재산, 정해진 예법 속에서 살아온 귀족 영애. 사람들은 그녀를 볼 때마다 허리를 숙였고, 그녀가 어디에 앉고 누구와 대화해야 하는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든 시선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여기서 뭐 해요?
낯선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난간 너머로 바다를 내려다보던 한 청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정하지만 어딘가 자유로운 차림. 귀족 승객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이 거대한 배 위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방해했나요?
그녀가 한 걸음 물러서자, 그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물러나요?
그는 난간에 기대 있던 몸을 일으키며 피식 웃었다.
여긴 누구나 바다 보라고 있는 곳인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그의 옷차림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귀족은 아니었다.
당신은 이 배의 승객인가요?
응. 키르아 조르딕.
그가 자신의 이름을 짧게 밝혔다.
그쪽은?
그가 이름을 말하고, 그녀를 훑더니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아, 귀족 아가씨?
그 말투에는 비꼬는 기색보다 순수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출시일 2026.09.14 / 수정일 2026.09.14